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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구를 위한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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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구를 위한 변명
  • 전민일보
  • 승인 2017.06.08 10: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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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구 기자, 그는 경향신문 논설위원이자 노무사이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부분이있다. 그는 노무사 자격증을 가지고 기자가 된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노후 대비를 위한 안전판으로서의 자격증 취득도 아니었다. 그는 한국의 노동현실과 관련해 노동 전문기자로서의 직업정신과 전문성의 조화를 통해 노동과 노동자의 문제를 좀 더 설득력 있게 전달하기 위해 도전한 것이라고 얘기했다.

내가 그를 안지도 어느 덧 10년이 훨씬 지났다. 그동안 많은 분들이 떠났지만 그는 지금도 경향신문에 남아있다.

그가 논설위원으로서 쓴 사설과 [여적]을 읽을 때면 내 어쭙잖은 글과 빈약한 철학을 되돌아보곤 했다. 그는 편한 사람이 아니다.

2005년 당시 이헌재 경제부총리가 그의 취재를 통해 결국 옷을 벗었던 과정에서 보여준 기자정신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바로 지난 정권에서 국정원 댓글조작 사건과 관련해 검찰과 사법기관을 상대로 보여준 집요함은 그에 대한 수많은 고소 고발로 이어졌다.

무소불위의 권력이 무엇인지 보여준 청와대 문고리 3인방에 대해서도 그는 감시의 눈을 거두지 않았다.

그가 한국 노동문제와 불편한 현실에 대해 얼마나 천착했는지는 앞서 얘기한 그대로다. 그는 일관되게 노동자와 약자 편에 서있었다.

그런 그가 적잖은 사람들로부터‘기레기’라는 조롱과 비난을 받는 참담한 상황이 발생했다. 이유는 그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의 위장전입 의혹과 관련해 쓴 기사 때문이다.

내가 본 강진구 기자는 너무도 진보적이지만 편향성을 소유하고 있지 않은 존재다.

그에게는 어용지식인이 어울리지 않는 이유다. 비록 그것이 정당한 명분을 가지고 있다할지라도 그에겐 보다 엄격한 원칙이 있어 보인다.

어쩌면 그가 쓴 기사의 본질은 자신의 문제제기를 통해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가 정당성을 강화할 수 있도록 한 것일지 모른다. 그것은 적어도 그가 기자로서 가지는 최소한의 직업윤리 의식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인과 그 문화를 한 마디로 정의하는 [국화와 칼]에서 적잖은 사람들은 국화에서 긍정적 이미지를, 칼에서 그 반대의 심상을 떠올린다.

국화는 평화를, 칼은 전쟁과 폭력을 상징한다는 말과 함께 두 단어는 언뜻 모순적이다.

루스 베네딕트는 일본인이 ‘아름다움을 사랑하고 예술가를 존경하며 국화 가꾸기에 몰두하는 국민’이자, ‘칼을 숭배하고 무사에게 최고의 영예를 돌리는 국민’이라고 말하고 있다.

섬세한 심미적 감수성을 지녔으되 잔혹한 무사도적 폭력성을 동시에 지닌 일본인의 모순적 모습. 그러나 이러한 이해는 매우 피상적이고 불충분하다.

실제로 국화에 존재하는 것은 우아함과 아름다움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본인은 꽃잎 하나하나를 어루만지며 작은 철사로 미세한 부분까지 고정하여 국화를 가꾼다.

일본인은 국화를 가꾸듯이 공동체적 가치에 어긋나지 않도록 스스로를 엄격히 규제한다.

그들이 죄의식이 아닌 수치심의 문화를 가지게 된 근본적 이유다. 국화는 이중적 메타포를 갖는다.

칼도 다르지 않다. 그것은 폭력성이나 공격성을 상징하는 동시에 ‘마음의 칼’이라는 내면적 메타포를 갖는다. 칼을 지닌 사람은 그것을 녹슬지 않도록 닦아야 하듯이, 사람은 ‘마음의 칼’을 갈고닦아 자신의 행위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선비의 나라 조선과 사무라이가 지배하는 일본, 하지만 그것이 곧장 붓과 칼로 연결될 때 우리는 국화와 칼에서 간과한 부분을 꼭 같은 크기로 경험하게 된다.

붓의 나라 조선에서 벌어진 내적 살육의 과정은 칼의 나라인 일본에서 볼 수 있는 것보다 훨씬 집요하고 잔인했다.

칼로 베인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아물지만 붓으로 생긴 반목과 아픔은 시간이 갈수록 공고화 되고 이념화 되어갔기 때문이다.

현 집권당 원내대표인 우상호 학우도 참석했던 87년 한 모임에서 그곳에 있던 거의 모든 사람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선진적 막시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개량주의자’

오늘 난 또다시 ‘기레기를 옹호하는 사람’으로 불릴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난 강진구 기자를 믿고 응원한다. 때로 오해는 국화와 칼에 국한하지 않는다.

장상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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