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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강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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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강생
  • 전민일보
  • 승인 2017.06.07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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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채플을 마치고 학교식당으로 가는 길에 ‘수필산책’과목을 수강하는 심영섭 목사님을 만났다.

목사님은 거동이 불편하여 전동 휠체어를 타고 다니신다.

며칠 전 병원에서 글쓰기와 관련된 책을 손에 든 어르신을 만났는데, 그 어르신이 ‘수필산책’수업을 청강해도 괜찮겠냐고 하셨다.

늘그막에 글을 쓰고 싶어 글쓰기에 대한 책을 몇 권 빌려 봤지만, 생각한 것처럼 글을 쓸 수 없어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다음 날 오후 4시 강의실에서 목사님께서 말씀하셨던 어르신을 뵀다.

어르신의 첫인상은 외모가 깨끗하고 등이 꼿꼿하였다.

수업 중간에 잠깐 짬을 내어 자신을 소개해달라고 부탁드렸다. 소양면 일임리에 사신다는 일흔한 살 임 모 어르신이었다.

어르신은 서울에서 살다 9년 전 홀로 계신 어머니를 봉양하려고 고향으로 내려왔다고 하셨다. 가족은 다 서울에 있고 두해 전 아흔일곱을 일기로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지금 혼자 지내고 있다고 하였다.

낮에 경로당에서 마을 사람들과 어울리다 밤이 되어 집으로 돌아오면 어둠이 너무 무섭다고 하셨다.

전주 시내에 나가 지인들과 만나 놀면 그때뿐, 손에 잡힌 것 하나 없이 시간만 쓸쓸하게 지나버려 아프다고 하셨다.

날이 갈수록 인생을 헛산 것 같아 속이 상하고 속이 상한 것만큼 외로움의 골이 깊어졌다고 하셨다.

그래서 머릿속에 꽉 찬 생각을 글로 쓰고 싶어 글쓰기와 관련된 책을 보고 계신다고 하셨다.

어르신 말씀을 들어보니 거창하게 자서전이나 회고록을 쓰려는 것이 아니라, 고독이 딱딱하게 밀려와 숨이 막힐 때 글을 쓰면서 숨통을 트고 싶은 것일 뿐. 당신이 거대한 어둠의 밧줄에 묶여 꼼짝달싹하지 못할 때 글을 쓰면서 어둠을 잘라내고 싶을 뿐.

예고 없이 불쑥불쑥 생긴 삶의 상처를 글을 쓰면서 후후 불어 잦아들게 하고 싶을 뿐. 그 위 그 아래도 아니었다.

어르신은 수업시간 내내 자세 한 번 흩트리지 않으시고 학생들이 쓴 글을 온몸으로 경청하셨다.

둘째 주 강의 때 강의실에서 또 어르신을 뵀다.

시내버스를 타고 오시다 상관을 지나쳐버려 항공대 근처에서 내려 학교까지 걸어왔다고 하셨다.

소양은 시내와 달리 가물에 콩 나듯 잊힐만하면 시내버스가 한 대씩 온다. 소양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전주로 나왔다.

전주에서 신발 갈아 신듯이 시내버스를 갈아타고 학교로 오는 길이 노구에 여간 녹록지 않았을 것이다. 이날 따라 끝물에 이른 봄 햇살이 숨을 턱턱 막힐 정도로 기세등등하였다.

쉬는 시간이 되자 학생들이 어르신에게 스쿨버스 타는 방법을 알려드리기도 하고, 음료수나 간식을 챙겨 드리기도 했다.

어르신을 불편하게 여긴 학생이 한 사람도 없었다. 오히려 그 나이에도 굴하지 않고 글쓰기를 공부하려는 간절한 몸짓에 도전받는 모습이었다.

강의시간마다 노후를 유쾌하게 보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을 드러내는 글쓰기라고 학생들에게 강조해왔다.

이런 잔소리를 뜻하지 않은 청강생이 나타나 증명해주었다.

오늘은 문학 동아리 학생들과 모임이 있는 날이다.

회장인 혜리가 어르신을 모시고 맨 먼저 연구실로 들어왔다. 강의시간에 어르신께 문학 동아리를 안내해드렸지만, 곧바로 참석하실 줄은 몰랐다.

글쓰기에 대한 절박함이 노구를 이토록 민첩하게 만들었을까. 학생들이 쓴 글을 합평하면서 글감이 없어 글을 쓰지 못한다거나, 시간이 없어 글을 쓸 수 없다고 한 것은 핑계이자 사기라고 했다.

글을 쓰지 않고 참석한 학생을 꾸짖고 나자 어르신이 자신은 띄어쓰기도 잘못하고 문장부호도 잘 부릴 줄 모른다고 하셨다.

수업시간이나 동아리에 참석하여 글을 발표하지 않아도 좋으니 하루에 한 문장이라도 매일 쓰는 연습을 하시라고 했다.

오늘 감사할 일은 무엇인지, 내가 용서할 사람은 누구인지, 자신을 친구로 삼고 말을 건다면 이야깃거리는 무엇인지, 내 안에 있는 분노의 정체는 무엇인지, 왜 지금 아픈지, 왜 사랑했는지, 아니면 왜 미워했는지, 사람들 사는 마을엔 바람이 왜 잠들지 못하는지, 누군가를 위해 노래하지 못하고 춤추지 못하는지.

청강생이 쓴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구수하게 들을 날이 여름 오듯이 왔으면 좋으련만, 서두르지 않고 오래라도 좋으니 기다리려고 한다.

폐활량을 키워야 글의 집으로 귀가하는 것이 늦지 않을 테니까.

최재선 한일장신대 인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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