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4-03-29 17:10 (금)
그리운 선생님
상태바
그리운 선생님
  • 전민일보
  • 승인 2017.05.19 10: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여중 2학년생의 소녀는 가을에 개최되는 고전읽기 경시대회를 앞두고 있었다.

소녀가 다니는 학교에서는 독서를 좋아하는 학생들을 선발하여 학기 초부터 방과 후에 고전 독서지도를 하고 여름방학이 다가오자 합숙훈련을 기획하였다. 합숙훈련은 2주간을 예정하고 완주군 운주계곡에 있는 돌담집으로 그 장소가 정해졌다.

합숙훈련이 시작되는 날 고전읽기경시 대회 준비학생들은 책과 침구를 챙겨들고 학교에 모여 운주계곡으로 출발했다.

돌담집 주인 되시는 선생님과 고전읽기 담당 선생님이 동행하셨다. 버스종점에서 내려 산길로 들어가서 열 개의 계곡을 건너야 그 곳에 도착한다는 선생님의 이야기를 미리 듣긴 했지만 돌담집으로 가는 길은 산길을 10여리 이상 걷는 강행군이었다.

산길을 한참 걷다보면 길이 없어지고 계곡이 나타났다.

운동화를 벗어들고 맨발로 계곡을 건너 자갈길을 걸었다. 자갈길을 걷다보면 또 다시 넓은 시내가 흐르고 있었다.

정말 그렇게 10개의 계곡을 건넜다. 깊은 산속, 문자 그대로 심산유곡에 예의 돌담집이 있었다.

돌담집은 할머니 한 분이 지키고 계셨다. 별이 반짝 반짝 빛나는 한밤중에 도착한 10여명의 손님들을 위하여 할머니는 가마솥에 잡곡밥을 지어 감자된장국과 열무김치에 저녁상을 차려주셨다.

늦은 저녁식사를 마친 소녀들은 모기장을 치고 잠이 들었다. 계곡물소리가 밤새 들려왔다. 소녀는 아침 일찍 눈을 떴다.

계곡에서는 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리고 돌담집 계단을 내려가면 바로 넓은 시내가 흐르고 있었다.

냇가에 쪼그리고 앉아 맑은 시냇물을 손에 떠서 세안을 했다. 비누거품이 빨리 없어지지 않아서 여러 번 헹구어 세안을 했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계곡의 그늘을 찾아서 삼국유사를 읽기 시작했다. 점심 무렵이 되었다.

교대로 식사당번을 맡아 할머니를 도아 식사준비를 하기로 했다. 식사당번이 된 그녀와 친구는 수제비를 끓이기로 했다. 밀가루를 반죽하고 할머니에게 텃밭의 호박 한 개를 얻었다. 마침 선생님들이 계곡에서 다슬기를 잡아오셔서 다슬기국물에 밀가루 반죽을 떼어 넣은 다슬기수제비를 만들었다.

햇빛은 쨍쨍 빛나고 있었지만 시원한 바람이 불어드는 돌담집 평상에 둘러 앉아 먹는 수제비의 맛을 어떤 맛으로 표현할까?

점심식사를 마치고 이어지는 고전읽기, 책갈피 해두었던 책을 펼쳐들고 다시 삼국유사의 이야기에 몰입하였다. 이렇게 사흘이 지나갔다. 그러나 산중의 기후에 적응하지 못한 소녀는 심한 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동행하셨던 담당선생님께서는 산중에서 병이 심해진다고 판단하고 고열에 시달리는 소녀를 데리고 귀가 길을 동행해주셨다.

선생님과 함께 산길을 따라 걷다가 급류가 흐르는 개울가에 이르렀다. 선생님은 소녀가 개울물에 발을 담그고 건너면 감기가 더 심해질 까 염려하시며 그녀를 업고 개울을 건넜다.

선생님은 여식 같은 어린 제자를 등에 업으셨겠지만 마악 사춘기에 접어든 소녀는 혼미한 정신속에서도 얼굴이 달아오름을 느꼈다.

산중에 들어갈 때처럼 열 개의 개울을 그렇게 건너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선생님과 함께 버스를 타고 그녀는 안전하게 집에 도착하였다. 선생님은 산중 돌담집으로 다시 돌아가셨다.

집에 도착한 소녀는 자리에 드러 누었다. 꼬박 이틀 밤낮을 앓고 일어났다. 그러나 현기증이 일어나 자리에 다시 누웠다.

고열은 내렸지만 소녀의 마음속에 무언가 허전한 마음이 자리 잡고 알 수 없는 그리움이 자라기 시작했다. 그리움! 엄마, 아빠, 할아버지,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 이후에 처음 찾아온 다른 느낌의 그리움이었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개학을 했다. 개학 일주일 후 고전읽기 경시대회가 치러졌다.

다행히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다. 담당선생님은 소녀와 독서친구들을 불러 칭찬을 해주셨다. 새 학년이 시작되던 이듬해 선생님은 교감선생님으로 승진하여 다른 학교로 발령을 받아 떠나셨다.

선생님이 떠나가시고 그녀는 여중 3학년을 보내고 부쩍 자라 여고생이 되고 여대생이 되고 성숙한 숙녀가 되어갔다.

지금은 그 당시 선생님보다 더욱 많은 연륜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땐 말할 수 없었지만 선생님이 정말 그립다. 선생님이 수업하시는 역사시간이 되면 눈망울을 반짝이며 열심히 공부했었는데, 선생님의 흥미로운 수업에 집중하다보면 45분의 수업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갔었다.

스승의 날을 보내면서 문득 선생님이 생각나서 서가에서 삼국유사를 꺼내들고 42년전의 소녀로 돌아가 책장을 넘겨본다.

소현숙 전북도 여약사회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청년 김대중의 정신을 이어가는 한동훈
  • 신천지예수교 전주교회-전북혈액원, 생명나눔업무 협약식
  • 남경호 목사, 개신교 청년 위한 신앙 어록집 ‘영감톡’ 출간
  • 우진미술기행 '빅토르 바자렐리'·'미셸 들라크루아'
  • 옥천문화연구원, 순창군 금과면 일대 ‘지역미래유산답사’
  • 도, ‘JST 공유대학’ 운영 돌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