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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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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 전민일보
  • 승인 2017.05.17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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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애야! 점심 먹었니? 내가 밥 사줄 테니 함께 가지 않을래?”

오늘은 강의가 없지만, 학생들이 이번 주에 낸 리포트를 첨삭하려고 학교에 나왔다.

점심시간에 되어 식당으로 가는 길에 은애를 만났다. 은애는 신학부 1학년 학생이다. 아버지가 여수에 있는 낙도에서 목회하고 계신다. ‘인문고전’ 수업시간에 늘 맨 앞에 앉아 수업에 열중할 뿐만 아니라 조장을 맡아 최선을 다하고 있다.

밥과 찬을 푼 식판을 앞에 두고 은애가 두 손을 가슴에 올렸다. 그리고 오랫동안 기도를 했다.

식사 기도를 너무 진지하게 하는 은애 앞에서 기도를 대충 하고 숟가락을 짚어든 내 자신이 머쓱해졌다. 은애는 감사하게 잘 먹겠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

점심을 대충 때우려던 참이었는데, 날 만났다고 했다. 삼천오백 원 안팎하는 학식이 부담스러워 끼니를 대충 때우는 학생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오래전 알았다.

요즘 저녁을 거르기 때문에 점심을 든든히 먹는 편이다.

밥과 찬을 과하게 퍼 온 것이 은애에게 좀 부끄러워 저녁을 거른다고 말했다.

내 말을 들은 은애가 자신도 저녁을 거르고 싶다고 했다. 집을 떠나 객지에서 객밥을 먹으면서 저녁까지 거르면 생활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소식할 것을 권했다.

문득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있는 큰 아들이 생각났다. 워낙 입이 짧아 끼니나 제대로 찾아 먹는지 알 수 없다.

세상살이 하면서 우리는 수많은 사람을 만난다. 그리고 함께 밥을 먹어야 할 일이 생긴다.

무엇을 먹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을 만나 어떤 대화를 나누느냐가 중요하다.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 좋아하는 음식을 먹는 것만큼 기쁘고 맛있는 일은 없을 것이다. 밥을 먹는 것은 끼니를 채우는 일일 뿐만 아니라, 만남을 통해 서로를 연결하는 합일점이기도 하다.

최근 ‘혼밥’이라는 말이 유행이다. 이 말은 혼자 밥을 먹는다는 말이다. 1인 가구 가 520만 시대에 이르면서 1인이 생활하는 소비 경향이 늘고 있다.

‘혼밥족’이 많아지면서 편의점 도시락, 간편 조리 식품 이용이 크게 늘고 있다. 이런 현상을 반영이라도 하듯 얼마 전 일본 푸드 저널리스트 히라마쓰 요코는 『혼자서도 잘 먹었습니다』 라는 에세이집을 발간했다.

혼자 영화를 보고, 혼자 여행을 가며 혼자가 편해진 세상에 혼자 밥을 먹는 것은 어쩌면 평범한 일상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런 ‘혼밥’을 먹는 사람들 뒤꼍에는 우울한 그림자가 있다.

몇천 원 하는 밥을 다른 사람과 함께 먹는 것이 부담스러운 불황의 그림자와 사람을 만나는 것이 마뜩잖은 우울한 정서의 그림자가 있다. 그래서 ‘혼밥’은 결핍과 고독을 서로 맞물고 있다.

때로는 혼자서 깊게 생각하고 고요하게 앉아 절대자를 바라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가끔 다른 사람과 간격을 벌려 자기 내면으로 침잠하는 시간도 필요하다. 그러나 살다 보면 내가 필요한 사람이 있다. 밤늦은 시간이지만, 대화 나누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고 눈코 뜰 새 없이 바쁜데, 차를 함께 마시길 원하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배가 고파 함께 밥 먹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그리워서 밥을 먹고 싶다고 한 사람이 있다.

이럴 때 그 사람이 ‘혼차’하거나 ‘혼밥’하지 않게 핑계를 없애고 짬을 내도록 하자.

우리가 어떤 사람과 차를 마시고 밥을 먹느냐에 따라 우리 생애의 빛이 달라질 수 있다.

우리는 은연중에 서로에게로 물들어가는 존재이다. 식당에서 나오자 바람이 나무란 나무를 초록으로 덧칠하고 있었다.

은애가 다시 감사하다고 인사를 했다. 꽃이 왜 화사하게 피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최재선 한일장신대 인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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