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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무에게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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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무에게 묻다
  • 전민일보
  • 승인 2017.04.19 1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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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나무 아래 떨어진 꽃잎들이 몸을 서로 포개고 어울려 놀고 있다.

가끔 바람이 불어와 이들이 즐기는 평화를 훼방 놓지만, 이들은 다시 흩어진 평화를 한 곳으로 불러 오순도순 모여 있다.

꽃잎은 꽃잎 나름대로 생존하는 방법을 안다. 저마다 한 마디 이상 깊숙한 사연을 품고 한 데 어울려 있다. 서걱서걱 바람 지나는 길 정도 야무지게 트고 바람에 저를 가만가만 맡긴다.

서로 사랑하는 법도 안다. 숨 쉴 만큼 틈을 서로 절묘하게 벌려 햇살을 한 줌씩 불러 서로를 끌어안는다.

마음을 훤히 열고 귀를 세우면 그들이 나누는 대화를 들을 수 있다. 나무에서 떨어진 꽃은 사연이 다양하다.

바람을 핑계 대는 이가 있고 친구따라 그저 왔다는 이도 있다. 허공에서 내려와야 할 때가 언제인지를 알고 떨어졌다는 이도 있다.

육안으로 보면 그냥 가지에 매달려 있을 성싶은 꽃잎도 이렇게 다른 생각을 품고 산다. 생각하는 길이나 깊이도 각자 다르다.

벚꽃 아래 있는 빈 의자에 앉아 하염없이 지는 꽃잎을 본다. 봄날 오후 햇볕이 널찍하게 퍼져 있는 건넛산에 무덤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이승과 저승의 거리가 몇 뼘 되지 않는 지척이다. 우리 생은 자신이 키운 나무만큼 자라다 단풍처럼 물들어 어느 날 문득 낙엽처럼 떨어지는 것 같다.

우듬지에 매달린 홍시도 까치밥으로 선택받지 못하면 스스로 꽃처럼 떨어진다.

이들 낙하 속에는 시간이 강처럼 흐르고 있다. 생명을 가진 것치고 어느 것 하나 이 강을 거슬러 오를 수 없다.

한 잎 꽃잎이 되어 벚나무에게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지 물었다. 나무는 좀처럼 입을 열지 않고 고요하게 미소만 짓는다.

십 수 년 정도 되었을 법한 벚나무는 온몸에 세월의 풍상을 지문처럼 새기고 고고하게 서 있다.

그리고 오래된 사연을 풀듯이 분신과 같은 꽃잎을 구름이 되어 꽃비를 뿌리고 있다.

내리고 내려놓았는데도 유산처럼 남은 꽃잎들로 벚나무는 수많은 꽃을 달고 있다.

벚나무 아래 떨어진 꽃들이 한결같이 곱다. 꽃은 떨어져도 꽃이다. 꽃이 떨어지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열매를 맺기 위한 성장을 의미한다.

자연을 거역하는 것은 비생명적인 짓이다. 필 때를 알고 피어나고 질 때를 알고 져야한다.

지금까지 살면서 빤한 말이라는 핑계를 대고 건성으로 넘기고 무시한 문장이 참 많았다.

인문고전 시간에 학생들에게 논어를 강의하면서 논어에 나오는 말은 먼저 내 자신이 배워야할 것이라고 여러 번 고백했다. 오늘은 벚나무가 마치 공자처럼 보인다.

어리석고 왜소한 문하생이 되어 나무에게 “스승님!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입니까?”라고 여쭌다. 벚나무는 몸 밖으로 꽃잎을 가볍게 내려놓을 뿐 여전히 아무 말이 없다.

꽃잎 몇 개가 귀 끝을 날카롭게 스치며 떨어졌다. 눈물이 핑 돌도록 아프다.

꽃잎에 맞아도 아프다는 것을 오늘 알았다. 사소한 무게일지라도 정통으로 맞으면 뾰쪽한 통증이 된다는 것을.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 궁금한가?”

“네, 스승님!”

“나는 자네에게 여러 번 말했네.”

“잘 듣지 못했습니다.”

“허허, 그랬겠지. 날 자세히 정독해 보게.”

때 맞춰 불어오는 바람에 꽃잎이 한량없이 날렸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것은 사소한 무게가 아니라 나무가 나에게 주는 따끔한 충고였다. 꽃잎은 벚나무가 나에게 들려주는 언어이자 문장이었다.

잘 피었다가 때가 되면 하나씩 고요하게 내려놓으라는 말이었다.

내려놓아야만 드디어 가벼워지고 자유하다는 것을 묵언으로 보여준 것이다.

여태 살아오며 생각 속에서만 비워내고 내려놓았지 차마 버리지 못하고 붙잡고 있는 것이 너무 많았다.

부질없이 붙잡고 있던 것을 봄날, 벚꽃처럼 하나씩 내려놓으려 한다.

최재선 한일장신대 인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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