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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카란다꽃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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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카란다꽃의 노래
  • 전민일보
  • 승인 2017.04.18 10: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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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소식이 나의 우체통에 배달되었다. 개나리, 진달래, 벚꽃의 개화소식이 아니었다. 맑은 밤하늘을 바라보면 북두칠성을 바라볼 수 있는 우리나라하고는 반대로 남십자성이 뜨는 밤하늘이 있는 나라의 꽃소식이었다.

호주 이민 작가인 나그네 향기시인님(지인의 필명)이 ‘환상’이라는 시집을 보내주셨다. 시인은 한권의 시집에서 자카란다꽃을 주제로 머나먼 이국의 화신을 서정성 짙은 필치로 알리고 있었다.

자카란다꽃! 우리나라의 벚꽃처럼 대양주의 봄에 피어나는 꽃이었다. 벚꽃이 연분홍빛으로 봄의 설렘과 환희를 이야기하는 꽃이라면 자카란다꽃은 연분홍빛에 진한 그리움이 한 겹 덧입혀진 보랏빛이었다.

설렘과 환희를 넘어 그리움이 송이송이 매달려 있는 꽃이다. 지구촌의 남반구에만 피어난다는 자카란다꽃의 향기를 찾아서 웹서핑을 하면서 몇 날 밤을 지새웠는지 모르겠다.

높은 나무 가지에 보랏빛 꽃이 포도송이처럼 탐스럽게 주렁주렁 피어나는 사진을 보면서 오동꽃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오동꽃이 피는 계절이면 아름드리 커다란 나무아래 오동꽃이 송이송이 떨어져 있었는데 그 꽃을 주워 꽃탑을 쌓으며 보랏빛 꽃의 아름다움에 취하곤 했었는데,,,,

남반구 대양주의 봄은 자카란다꽃이 보랏빛 터널을 이루고 보라빛꽃잎이 난분분 낙화한다고 한다.

보랏빛은 고귀, 신성함을 담고 있는데 하늘의 상징인 파랑색과 인간 또는 혈액을 상징하는 빨강의 혼색이어서 신과 인간의 조화를 상징한다. 그래서 이 보랏빛 자카란다꽃을 보면 꽃의 요염이나 고혹을 넘어 신의 축복과 같은 아늑함을 준다고 했다. 인도의 시성 타고르는 이 보랏빛 꽃나무를 바라보며 노래했다.

“고요하라, 나의 마음이여! 이 나무들이 기도하고 있나니(Be still, my heart, these great trees are prayers)”

나그네향기시인은 이국의 땅에서 고국에 대한 그리움을 그 곳 뜰에 피어난 자카란다꽃향기로 분향하면서 망향제를 올리고 있을지 모르겠다고 생각해본다.

태초의 언어가 태어난 보금자리, 무한한 자유로 소통되는 본향에의 회귀를 기원하는 간절한기도문을 나지막하게 낭송하고 있는 소리가 들려온다.

시간이 갈구하는 생의 원천
여린 영혼으로 낙화하는
자카란다꽃이여
내 젊은 추억이여......

호주의 퀸슬랜드대 캠퍼스 내에는 이상한 소문이 있었다. 보랏빛 자카란다꽃이 피어나는 계절에 떨어지는 꽃잎을 머리에 맞으면 시험을 통과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소문을 믿어서일까? 보랏빛 꽃이 터널을 이루는 아름다움의 절정에도 불구하고 꽃을 구경하며 꽃놀이를 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찾아보기 쉽지 않다고 한다.

자카란다꽃이 피어나는 남반구의 늦봄 초여름은 마침 대학교 내에서 졸업시험과 기말시험을 보는 비상시기여서 하루 종일 책 속에 파묻혀 있어야 하는 대학생들은 신의 걸작에 가까운 그 풍경들을 감상할 겨를이 전혀 없다고 했다.

그러므로 머리에 보라색 꽃잎을 달고 있는 학생은 공부에 관심이 없이 한가하게 돌아다니면서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과이니 당연히 시험을 통과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남십자성이 보이는 남반구의 봄에 자카란다꽃이 피어난다면 북두칠성이 보이는 북반구의 봄에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벚꽃이 피어 하롱하롱 날리는데 정작 나 자신도 캠퍼스가 유난히 아름답기로 소문났던 모교의 벚꽃터널을 제대로 바라보며 지나본 적 이없었다.

벚꽃이 만개하던 그 즈음에는 항상 중간고사가 치러졌고 중간고사 기간이 지나면 벚꽃도 지고 말았다. 젊음의 대학시절을 그렇게 보냈다. 학창시절을 마치고 결혼하고 아이들이 태어나 성장한 후 비로소 벚나무 길을 여유 있게 거닐며 머리에 떨어지는 꽃잎을 만져보았다. 올 봄에도 벚꽃길이 환하게 열렸다가 봄비와 함께 꽃비로 흩날렸다. 하롱 하롱 흩날리는 벚꽃을 바라보며 이국의 자카란다꽃을 떠올려본다. 자카란다꽃은 분홍빛의 젊은 시절을 보내고 생의 관조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계절에 찾아온 花信이었고 삶의 성찰이 덧입혀진 보랏빛이었다.

머나먼 남반구의 이국을 그리며 눈을 감아보고, 생의 피안을 생각하며 두 손을 모아본다.

아무도 모르게 꿈꾸던 진보라색 몽우리 아름다운 새소리에 내려놓고....

라빈드라나드 시인과 나그네 향기시인이 시공을 넘어 자카란다 꽃그늘을 함께 거닐고 있다. 보랏빛 꽃송이가 나풀나풀 그들의 머리위로 떨어진다. 문득 손가락으로 내 머리칼을 쓸어본다. 이윽고 보랏빛 꽃잎 하나를 떼어내 손바닥에 올려놓고 바라본다. 자카란다꽃의 노래가 들려온다.

소현숙 전북도 여약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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