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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의 장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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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의 장례
  • 전민일보
  • 승인 2017.04.12 10: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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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굣길에 눈물을 흘리며 달리는 장의차량 행렬을 보았다.

누군가 한 생을 마감하고 이 세상에서 마지막 길을 떠나고 있다. 지나가는 상여를 보면 재수가 좋다는 말이 지금도 유효기한이 지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집에서 학교 오가는 길은 시내를 거치지 않고도 지름길이다. 집과 학교가 시내와 떨어져 있어 누리는 호사이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강의시간과 관계없이 미리 여유 있게 학교로 출발한다.

그래야 차창 밖 풍경을 내 마음속에 다 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산은 늘 그 자리에 있지만 볼 때마다 낯빛이 다르고, 나무는 제 자리에서 한 걸음도 뗀 적이 없지만, 표정이 다양하다.

얼마 전까지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발이 묶였던 상관저수지는 작년에 자유스러운 몸이 되어 생기가 돈다. 아침 햇살을 저마다 머리에 인 윤슬이 어깨동무하고 눈이 부시다.

아찔하게 휘돌아가는 굽잇길 상공에 한 무리 까치 떼가 왁자지껄 소란스럽다.

상공뿐 아니라 길에도 여럿, 마리 까치가 떼를 이뤄 분주하게 오르락내리락한다.

차를 갓길에 세우고 자세히 보니 길바닥에 무엇인가 피범벅이 되어 쓰러져 있다.

아마 차에 치여 죽은 들짐승을 허기진 까치들이 와서 먹으려니 생각했다. 차가 다가가자 까치 떼가 일제히 칼바람을 일으키며 공중으로 솟아올랐다.

살면서 순간순간 탈고되지 않은 소설을 썼다가 지운 적이 많다.

까치가 자리를 비킨 곳에 까치 한 마리가 쓰러져 있었다.

얼마 전까지 모여 있던 까치들이 부음을 받고 문상하러 온 것이 분명했다. 차 속에 있는 쇼핑백을 꺼내 죽은 까치를 화장지로 싸서 넣었다. 까치 몸에 자동차 발자국이 선명하게 박혀 있다.

허공에 모여 있던 까치들이 만선으로 돌아오는 배 꽁무니를 따르는 갈매기처럼 차를 따랐다.

영정을 싣고 운구차를 인도하는 선도차처럼 비상등을 켰다.

학교 주차장에 이르렀을 때 뒤따르던 까치의 비행이 멈추고 하늘은 시리게 푸르렀다.

이른 오후에 있는 강의를 마치면 집 뒷산에 까치를 묻어줄 요량으로 죽은 까치를 그대로 차에 두고 내렸다.

인문고전 <논어> 수업 시간에 유별스럽게 마음에 끌리는 말씀이 있었다. “공자께서는 낚시질하여도 그물질을 하지 않으셨으며, 주살 질은 하셔도 둥우리에 깃든 새를 쏘아 맞히지는 않으셨다.”‘( 술이’26절) 오늘날 우리 사회는 생명감수성지 수가 떨어져 생명에 대한 경외감이나 존중감이 사라지고 있다.

강의를 마치고 짧은 오후 해가 묵방산 공제선을 넘기 전에 서둘러 집에 도착했다.

심장이 차갑게 식은 까치를 화선지에 곱게 싸서 뒷산으로 갔다. 온종일 햇볕이 오래 머무는 곳을 골라 땅을 팠다.

볕이 잘 드는 곳이라 땅속에 온기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까치 무덤을 평장으로 만들고 낙엽으로 따뜻하게 덮어주었다. 묘비 하나없이 쓸쓸했다.

그러나 그가 차 없는 세상에서 깊은 잠에 빠질 것을 생각하니 가슴 한쪽에 깊이 뿌리박고 있던 멍울이 충치처럼 빠져나왔다.

발끝에 차인 돌덩이 하나가 가파른 산길을 따라 구르다 계곡으로 떨어졌다. 이어서 암꿩 한 마리가 자지러지게 울면서 날았다.

최재선 한일장신대 인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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