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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을 다한다는 것이 선이 되기 위한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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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을 다한다는 것이 선이 되기 위한 조건
  • 전민일보
  • 승인 2017.04.05 09: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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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한 사람이 죽음 앞에서 실존적 고백을 한다. “여러분 우리는 모두 다시 만날 것입니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운명입니다. 독일 만세. 아르헨티나 만세. 오스트리아 만세. 나는 이들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인간이 자신의 예견된 비자발적 죽음 앞에서 이토록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면 그는 적어도 한 가지 부분에서는 마땅히 인정받을 만하다. 바로 자신에 대한 믿음이다.

그리고 그것은 치열함과 성실함이 녹아있는 시간의 흔적이기도 하다. 그는 죽음 앞에서 근엄했고 용감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얼마나 성실하며 맡은 바 일에 최선을 다했는지에 대해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나는 사무실의 일벌레일 뿐이었으며 모든 것이 문장을 통해, 명령을 통해 결정되었다. 요약하자면 나는 작은 톱니바퀴였던 것이다.”

그는 과연 어떤 사람이었을까. 주인공은 칼 아돌프 아이히만(Karl Adolf Eichmann)이다.

아이히만은 유대인 학살 프로젝트의 핵심 실무책임자였다.

그는 유대인을 식별하고 집결시켜 집단수용소로 보낸 후 학살하기까지의 전 과정을 설계한다. 그런 그가 나치 패망 후 미군 포로수용소를 탈출해 중동지역을 전전하다가 아르헨티나로 숨어든다.

독일계 이민자가 많은 그곳에서 그는 1960년까지 성공적으로 숨어 지낸다. 이스라엘 정부의 끈질긴 추적 끝에 체포된 그는 마침내 예루살렘 법정에 서게 된다.

그때 많은 사람들은 그가 무슨 말을 할 것인지 궁금해 했다. 그 중엔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도 있었다.

사람들은 그가 유대인에 대한 광적인 증오와 반유대주의에 세뇌된 지극히 비정상적 사고를 가진 인물이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여섯 명의 정신과 의사들로 하여금 아이히만의 상태를 검진하게 했다. 그런데 결과는 놀라웠다. 여섯 의사 모두 그를 ‘정상’으로 판정한 것이다.

그 중 한 명의 의사는 이런 말로 충격을 표현했다. “아이히만은 적어도 그를 진찰한 후의 내 상태보다 더 정상이다.”

이제 아이히만의 얘길 좀 더 들어보자. 그는 자신에 대한 살인죄 기소가 잘못 됐다며 이렇게 강변한다.

“유대인을 죽이는 일에 나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나는 유대인이나 비유대인을 결코 죽인 적이 없다. 이 문제에 대해 말하자면 나는 어떠한 인간도 죽인 적이 없다. (중략) 그 일은 그냥 일어난 일이다. 나는 단 한번도 그 일을 해야 한 적이 없었다.”

아렌트에 의해 밝혀진 너무도 유명한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다.

놀라운 직관력을 소유한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힌만]에서 그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그는 셰익스피어에 등장하는 이아고나 맥베스, 리처드 3세 같은 극악무도하거나 악마적 본능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의 말을 오랫동안 들으면 들을수록, 그의 말하는 무능력은 그의 생각의 무능력, 즉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데 무능력함과 매우 깊이 연관돼 있음이 점점 더 분명해졌다.

이제 묻게 된다. 난 아이히만이 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좁은 국도 한가운데 고양이 두 마리가 보인다.

내 차가 다가가니 그 중 한 마리가 자릴 피한다. 죽은 새끼를 차마 버려두지 못하는 어미 고양이의 슬픔이 그대로 내게 전해졌다.

그렇다. 생명의 소중함에 작은 것이 어찌 있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그토록 많은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한 당사자는 그 죽음에 그 어떤 책임도 없다 말한다. 자신은 지시에 따랐을 뿐이란 것이다.

나 역시 할 말이 없다. 아무런 잘못없이 잡힌 오소리를 몽둥이로 내려칠때, 나는 오소리가 지르는 고통의 소리를 방관했다. 짐승의 고통까지 거론하는 것은 비약이라고?

비록 인간 외의 동물이나 식물일지라도 생명에 대한 경외가 사라질 순 없다.

생명에 대한 존중이 사라진 사회에서는 바로 내가 ‘아우슈비츠의 유대인’이 될 개연성이 존재한다. 나는 종종 ‘최선을 다했다.’는 최면을 스스로에게 걸곤 한다.

하지만, 용기와 책임이 사라진 최선은 그 자체가 죄악이다.

한나 아렌트가 우리에게 던진 마지막 울림이다. “우리 모두는 아이히만이 될 수 있다.”

장상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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