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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말과 카타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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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말과 카타르시스
  • 전민일보
  • 승인 2017.03.24 09: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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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TV 예능 프로그램을 볼 때면 출연자가 상대방을 향해 서슴없이 “못생겼다” “멍청하다”고 독설을 내뱉는다. 인터넷 광고는 더 심하다. “이년아” “이놈아” 정도는 욕도 아니다.

거침없는 육두문자와 블랙유머가 이어진다. 케이블 드라마는 상상을 초월한다. “개 같은 놈” “×할년” “목을 따버린다” 등 쌍욕은 다반사고, 심지어 “창자를 걷어내서 빨랫줄에 널어버리겠다.”는 무시무시한 욕도 아무렇지 않게 한다.

그런데 이러한 욕설이 난무하는 드라마를 시청할 때면 귀가 쫑긋해지고 화면에서 눈을 쉽게 뗄 수가 없다. 왜 그럴까. 우선 욕설에 섞인 그 유머러스함에 신선한 재미를 느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유머러스한 장면들은 시청자들을 몰입하게 만든다.

웃다가도 긴장하게 만들고 다시 웃도록 해주면서 시원함을 느낀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런 드라마나 영화를 좋아하는지 모른다.

인터넷 댓글도 그렇다. 댓글이라는 말은 한자어 접두사 대(對)와 글을 합쳐 나온 말로, 이미 씌어져 있는 글에 대하여 쓰는 글이라는 의미이다.

이러한 댓글은 건전한 토론문화와 양질의 댓글 문화를 위해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등은 삼가야 하는데도 욕설 섞인 악성 댓글을 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일반적인 댓글에 비해 악플은 일종의 무기가 되어, 악플의 대상이 된 사람의 마음에 비수처럼 꽂힌다. 심지어 악플의 대상을 자살에 이르게 할 정도로 심한 악성 댓글도 있다.

악플은 언어폭력의 범주에 속하며, 심할 경우 사람의 생명을 앗아갈 수도 있는 중대 범죄다. 문제는 인터넷 기사나 글 말미에 누리꾼들이 달아놓은 다소 욕설 섞인 댓글을 읽었을 때 나도 모르게 쾌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단 나와 공감이 가는 댓글일 때만 그렇다.

각종 신문기사, 칼럼, 사설을 읽고 그 내용이 맘에 들면 위안이 되고 기분이 좋을 때가 있다.

어찌 보면 시원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고 할까? 카타르시스는 비극을 봄으로써 마음에 쌓여 있던 우울함, 불안감, 긴장감 따위가 해소되고 마음이 정화되는 일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詩學)에서 비극이 관객에 미치는 중요 작용의 하나로 든 것이다.

지난해 12월 동아일보에 “국민들의 집단 우울증”이란 제하의 필자 글이 나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검찰수사와 특검 수사를 받겠다고 공언해놓고 약속을 지키지 않기에 너무 화가 나서 쓴 글이다. 하지만 글 말미에 비난 댓글이 수십 개나 달렸다.

나름 정성을 다해 쓴 글인데 이런 댓글을 접했을 때 기분이 언짢고 화도 났다. 일단 입력된 막말은 마음에 상처를 남긴다.

놀라운 건 막말을 자주 듣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막말이 튀어나온다는 사실이다. 그만큼 막말의 전염성과 중독성은 무섭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의 발단은 언어폭력과 인격 모욕 등 ‘갑질’에 대한 분노에서 비롯됐다. 최순실 씨와 인연을 맺어왔던 고영태, 노승일 씨는 최씨의 거친 막말과 인격 모욕 등 갑질행태에 분노하고 이를 응징하기 위해 몰래카메라와 휴대폰 녹취 등을 통해 수집된 비리와 의혹을 언론에 폭로했다.

갑의 횡포와 모욕적 인신공격에 대한 을의 분노가 도화선이 되어 급기야 국가 운영의 공정성이 시험대에 오르게 된 것이다.

요즘 자유한국당의 대선 예비경선에 나선 홍준표 후보의 발언이 말썽이다.

홍 후보는 지난 18일 대구 서문시장에서 대선 출마선언을 한 뒤 ‘성완종리스트로 기소된 사건의 대법 판결이 남아 출마 자격 논란이 있다’는 질문을 받고 “0.1%도 그럴 가능성이 없지만, 없는 사실을 갖고 또다시 뒤집어 씌워 내가 유죄가 되면 노무현 대통령처럼 자살을 검토하겠다.”고 답해 논란을 일으켰다.

그는 지난달 28일에도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겨냥해 “민주당에서 1등 하는 후보는 자기 대장이 뇌물 먹고 자살한 사람”이라고 쏘아붙여 고인을 욕보였다는 비판을 받았다.

홍준표 지사는 과거 정의당 여영국 경남도의원(창원)을 향해 ‘개 짖는다’ ‘쓰레기 발언’ 등으로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다. 또 민감한 질문을 던진 기자에게 “너 진짜 맞는 수가 있다.” “안경 벗기고 아구통을 날리겠다.” 등의 수없는 저질스런 말을 해왔다.

옛 사람들은 “만 가지 화(禍)의 근본이 입에서부터 출발한다.”고 하여 항상 말조심 할 것을 가르쳤다.

막말을 듣고 시원함을 느끼는 사람도 있겠지만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하물며 한 나라를 경영하겠다며 대선주자로 나섰다면 한마디 한마디가 신중하고 조심스러워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은 품격을 상실한 정치인은 지도자감이 될 수 없다. 그리고 이런 사람을 퇴출하는 건 유권자의 몫이다.

신영규 한국신문학협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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