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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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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주소
  • 전민일보
  • 승인 2017.03.22 09: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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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용이 머리를 한 번 깎으려면 용을 써야 한다. 스무 살이 되었지만 갓 돌 지난 수준인 지능을 가져 말귀를 알아 듣지 못할 뿐만 아니라 앞마저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훈용이 머리를 깎으러 미장원에 가는 날, 집사람과 나는 머리카락이 잘 묻지 않는 옷을 입어야 한다.

집사람이 훈용이를 안고 의자에 앉으면 나는 훈용이 두 손을 잡고 움직이지 않게 단속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너무 힘이 들어 웬만하면 오늘도 그냥 지나치려 했지만, 내일 교회 갈 때 데려가야 하므로 집을 나섰다.

주 중에 훈용이 머리를 깎으려고 했지만, 시간을 내기 어중간했고 훈용이가 거의 날마다 날을 새고, 아침에 잠이 드는 바람에 주말에 겨우 날을 잡았다.

훈용이 머리는 아무에게나 맡길 수 없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의사소통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훈용이 머리를 깎았던 미장원으로 가야 그런대로 수월하게 깎을 수 있다.

모 아파트 2층 상가에 있는 미장원으로 오르는 길부터 훈용이게는 장애물이다. 우리 부부가 훈용이 손을 하나씩 잡고 계단을 오를 때마다 훈용이는 몸을 비틀며 불안해한다.

이 과정에서 마음에 들지 않으면 사정없이 손을 꼬집기 일쑤여서, 내 손은 그런대로 온전하지만, 집사람 손은 흉터투성이다.

여기에다 행동이 온전하지 못한 훈용이를 보고 지나는 사람마다 이상하게 쳐다보는 시선은 우리가 넘어야 할 해발 구천구백 미터 고지이다.

다행히 주말인데도 미장원은 북적거리지 않았다. 파마를 막 마친 사람이 있어 곧 바로 훈용이 차례가 되었다.

예전처럼 집사람이 가운을 입고 훈용이를 안으려고 하자, 미장원 아주머니가 훈용이만 앉혀보라고 했다.

반신반의하며 훈용이에게 가운을 입혀 의자에 앉히자, 우리가 염려했던 것과 달리 훈용이가 가만히 있었다.

이발기 돌아가는 소리에 고개를 한번씩 돌리거나 가운을 벗으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종전과 달리 머리를 깎는 내내 얌전하게 앉아 있었다.

이런 훈용이를 보고 집사람은 “우리 훈용이! 정말 잘한다. 정말 착하다.”라고 연신 칭찬을 하였다. 나도 옆에서 “우리 훈용이! 다 컸다.”고 몇 마디 거들었다.

훈용이가 다른 때와 달리 머리를 수월하게 깎아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고, 마음도 한결 홀가분했다.

집사람은 오늘같이 훈용이가 말만 잘 들으면 머리 깎는 것 걱정할 일이 없겠다며 흐뭇해하였다.

얼마 전 페이스북에 우리 학교를 졸업한 세민이가 밥을 사 달라고 흔적을 남겼다. 세민이는 지적 장애가 있다. 졸업했는데도 학교에 종종 나온다.

어느 날 학교에서 세민이와 마주쳤는데 역시 밥을 사달고 했다. 세민이 인사는 밥 한 번 사 달라는 것이다.

난 세민이가 밥을 사달라고 한 것은 배가 고프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이 몹시 그립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세민이를 보고 단어 한 마디 꺼내지 못하는 훈용이가 너무 안쓰러웠다.

그런데 오늘 훈용이가 의자에 혼자 앉아 머리를 잘 깎은 것을 보고 기뻤다.

스무 살인데도 다섯 살 정도밖에 되지 않는 신체에, 빛 한 점 보지 못하고,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저 스스로 밥 한 술 뜨지 못하지만, 일순간 이런 것은 온데간데없었다.

우물은 봄 여름 가을 겨울 할 것 없이 체온이 늘 한결같다. 다만 순간순간 천만리를 오가는 변덕스러운 우리 마음이 차갑거나 따스하다고 느낄 뿐이다.

운명처럼 여러 장애를 가진 훈용이를 아들을 둔 아비로서 하루에도 수십번씩 간사한 생각이 널뛰기한다.

어떤 때는 훈용이를 내 삶의 핑곗거리로 삼기도 하고, 글감으로 쓰면서 동정이나 연민에 호소하는 오류를 일삼기도 한다.

자녀가 미장원 의자에 다소곳이 앉아 머리를 깎는 것은 보통 사람이나 일반가정에서는 아주 사소하고 평범한 일이다.

그러나 훈용이 같은 복합장애를 가진 자식을 둔 부모 입장에서는, 우주에서 단 한 번 일어난 장면을 목격한 것처럼 흥분된 일이다.

아직 세상을 많이 살아보지 않았고 붓 대롱 같은 틈으로 겨우 인생을 들여다보고 있지만, 행복은 거창한 데 있지 않다.

오늘처럼 우리 훈용이가 까탈 부리지 않고 머리를 잘 깎는 모습을 보고 기뻐하고 있으니, 행복도 역시 멀고 먼 미지의 세계에 있는 게 아니다. 곧 행복의 본적은 마음이고 주소는 사소한 곳에 거주하고 있다.

최재선 한일장신대 인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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