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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진실을 받아들이는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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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진실을 받아들이는 자세
  • 전민일보
  • 승인 2017.03.15 10: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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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이 있지만 독립문 현판을 쓴 사람은 이완용(李完用)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그는 독립협회에서 핵심적 인물이었다.

그래서일까. 이완용이 언급된 독립신문 기사내용을 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그가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이다. 흔히 그를 친일파로 알고 있지만 그는 이미 친미파와 친러파의 핵심적 역할도 두루 거친 인물이었다.

매국노의 대명사인 그가 쓴 독립문 현판을 어떻게 할 것인가.

위대한 독립운동가로 추앙하는 서재필(徐載弼)은 어떤가.

미국 시민권자가 돼 조선에 돌아온 후 보인 행적을 보면 그를 대한민국 독립운동과 어떻게 연계 시킬 것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가 독립신문 발행에 심혈을 기울였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은 그가 받아 챙긴 보수가 당시 조선 민중의 기준에서 얼마나 거액이었는지에 대해 소명할 필요가 있다. 더욱 가관인 것은 그가 미국으로 떠나면서 조선을 지칭해 ‘귀국(貴國)’이란 표현을 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필라델피아에 잠들어 있는 필립 제이슨(Philip Jaisohn)을 고인의 유지와 상관없이 대한민국 국립묘지에 안장한 것은 한 편의 코미디다.

의사도 아니고 박사도 아닌 그가 미국 박사 행세를 한 것은 애교 수준이다. 정말 정 떨어지는 것은 따로 있다. 서재필은 고종(高宗)조차 우습게 알 정도의 미국시민이 돼 조선에 돌아온다.

그런 그가 자신이 참여한 갑신정변(甲申政變)으로 인해 죄 없이 죽은 아내와 젖먹이 아들 묘소를 한 번도 찾지 않았다.

독립운동 같은 거대한 담론 이전에 인간성에 대한 깊은 회의감을 안긴 인물이다. 나는 그가 한국 독립운동사에서 역할이 전혀 없다고 얘기하고 싶진 않다.

호머 헐버트 (Homer Hulbert)와 같이 외국인이면서 한국을 한국인보다 더 사랑한 사람도 있으니.

그런 점에서 우리는 필립 제이슨과 호머 헐버트를 비교하는 것이 합당할지 모른다. 개인적 견해를 말한다면 호머 헐버트의 한국 사랑이 더 커 보인다. 또 하나의 불편한 진실이다.

한국에게 중국은 어떤가. 그들이 ‘오천년 친구’라고? 독립문의 그 독립은 중국의 간섭과 억압으로 부터이다.

그런 중국이 오천년 친구라고. ‘소녀상’을 보고 일본에 대해 분노하는 것의 절반이라도 중국이 한국사에서 저지른 범죄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환향녀 논란이 위안부와 비교해 가볍다고 생각되는가.

‘중국이 아니면 한국은 살 수 없다’는 말을 공공연히 하는 사람들이 있다. 중국의 무역 보복과 성주 폭격이 두려운가. 분노가 먼저다.

한국이 중국 없이 생존 할 수 없다는 사고는 과연 어디에서부터 왔고 어떤 정당성을 가진 논리인가.

나는 예전 글에서 [아Q정전]에 등장하는 ‘정신승리법’을 비판한 적이 있다.

분명히 해둘 것은 그것이 굴종과 억압의 수용을 정당화하기 위한 논리가 아니라 구한말 보인 역사적 과오에 대한 비판일 뿐이란 사실이다. 이외에도 불편한 진실이 너무도 많다.

까뮈(Albert Camus)의 [이방인]에 등장하는 뫼르소는 어머니 장례식이 끝난 후 마리라는 여인을 만나 휴가를 즐긴다. 뫼르소는 이렇게 독백한다.

“그 때 나는 일요일이 또 하루 지나갔고, 어머니의 장례식도 이제 끝났으며 내일은 다시 일을 시작해야 한다. 그러니 결국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런데 뫼르소가 친구의 다툼에 연루되어 저지른 살인으로 재판을 받을때 그의 이런 생각은 심각한 결과로 돌아온다.

재판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은 뫼르소에게 일어난 우연을 필연으로 몰아간다. 그들은 뫼르소에게 사형판결을 내리면서 이렇게 정당화한다.

‘어머니 장례식에서 울지 않는 사람은 죽어 마땅하다.’ 정말 그런가?

구한말 이 땅의 변혁을 추구한 소수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왜 친일(親日)을 택했던 것일까. 우리는 막연한 의문 이상으로 그 불편한 진실에 대처해야 한다.

독립문 현판을 쓴 이완용, 필립 제이슨으로 남길 원했던 서재필, 그리고 ‘오천년 친구’라는 실체 없는 허상을 친일을 도구로 극복하려했던 소수의 엘리트.

이 모두가 우리가 직면한 불편한 진실의 일부다.

장상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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