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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서울로 오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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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서울로 오라는데
  • 전민일보
  • 승인 2017.02.22 09: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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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서울 신림동에 있을 때다. 당시 고시 준비생들에겐 과목별 바이블이 있었다.

그 중 외무고시 국제법의 경우는 김대순 교수가 쓴 책이 그랬다. 지금도 잊혀 지지 않는 일이 있다. 당시 출제된 외무고시 2차 국제법 문제에 EU법과 관련된 지문이 출제된 것이다.

재미있었던 것은 수험생과 강사들이 당혹해하던 반응이다. 그 지문을 출제한 것은 누구였을까. 그렇다. 나도 그렇고 당시 대부분은 주인공으로 김대순 교수를 지목했다.

그런데 왠지 내겐 낯설지가 않았다. 그것은 결코 내가 뛰어나서가 아니다.

제대 후 복학해 국제법을 수강했을 때 담당 교수가 바로 그 분이었기 때문이다. 연세대를 졸업하고 영국에서 유학 후 전북대에 오신 김대순 교수는 전형적인 영국풍의 신사였다.

비 내리던 봄 날 말끔한 정장에 단정한 머리를 하고 우산을 쓴 채 강의를 하기 위해 계단을 내려오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난 그 분의 강의를 듣던 시간이 매우 행복했다.

그래서인지 학점도 A+를 받았다. 그리고 외무고시 2차 시험을 치르던 수재들이 당혹해 했던 그 문제는 김대순 교수가 기말고사 시험으로 냈던 문제이기도 했다. EU법 권위자인 그가 출제위원이라면 충분히 개연성 있는 문제 아니겠는가. 내가 다른 사람들과 달리 친숙했던 것은 단지 그래서다.

김대순 교수가 전북대를 떠나 모교인 연세대로 자리를 옮길 때 나를 비롯해 많은 분이 축하와 함께 아쉬움을 지울 수 없었다. “말은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는 말이 어찌 학생에게만 해당 되겠는가. 그럼에도 근본적인 의문은 사라지지 않는다. 말은 그렇다 해도 왜 사람까지 서울로 가지 않으면 안 된단 말인가. 김대순 교수뿐이 아니다.

역량 있는 많은 교수들이 지방에서 서울로 떠났다. 그리고 그것은 현재진행형이다.

얼마 전까지 TV에 전북대 교수로 나오던 분이 어제는 서울대 교수로 나오는 것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한 숨을 쉬게 된다. ‘아! 또 한 분이 떠나셨구나.’

영국이 인도를 지배할 당시 총영사로 있던 크로머는 이렇게 얘기했다.

“동양인 또는 아랍인은 우둔하고, 활력과 자발성을 결여하며, 정도에 지나친 아부와 음모, 교활 그리고 동물학대를 일삼는다. 동양인들은 도로도 포장도 걸을 수 없다.(중략) 그리고 동양인은 상습적으로 거짓말을 하고 둔감하고 의심이 많으며 모든 점에서 앵글로 색슨족의 명석함, 솔직함, 고귀함과 대조적이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오리엔탈리즘]에서 이에 대해 이렇게 비판하고 있다.

“문화의 관점에서 말한다면, 지금 동양의 영향에 관해 그렇게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동양은 우리에게 미지의 것이 아니다. 우리들의 예술과 지식의 처음을 모두 동양에게 빚지고 있기 때문이다.” 서구의 오리엔탈리즘은 사라졌을까. 답은 회의적이다.

미국 ABC 방송의 인기 드라마 [로스트]에 김윤진이 출연했을 때, 우리가 본 것은 미국인이 생각하는 한국남편의 우스꽝스럽고 권위주의적인 행태였다. 내가 캄보디아에서 본, 딸 나이 또래의 여자를 끼고 취해있던 미국인의 모습을 일반화 한다면 미국인들은 과연 어떤 느낌일까.

문제는 우리 사회의 오리엔탈리즘이 생각 보다 광범위하게 포진해있다는 사실이다.

남녀, 빈부 그리고 서울과 지방은 서구와 비서구의 분류표와 비교해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이 두려운 것은 그것이 전혀 혐오스럽지 않게 포장돼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유럽인들이 중국에 대해 느꼈던 왜곡된 호감인 시누아즈리(Chinoiserie)나 터키에 대한 자신들의 맞춤형 취미를 의미하는 튀르크리(Turquerie)와 유사하게 나타난다.

지방은 서울에 존재하지 않는 전원과 휴식의 공간이자 포근한 고향이라는 미사여구로 남을 대상이 아니다. 서울에 존재하는 가치는 그 무엇이건 지방에도 동등하게 적용돼야한다.

‘인 서울’이라는 국적도 없고 기괴한 조어만큼 우리의 현실을 보여주는 말이 또 있을까.

사족, 김대순 교수는 자신의 책 서문에 전북대에서의 소중한 인연에 감사를 표했다.

장상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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