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쌀쌀한 날씨가 지속되고 있지만 절기는 입춘이 지나 바야흐로 봄이다.
휴일을 이용하여 봄맞이 대청소를 시도했다. 수건에 물을 적셔 서가의 먼지부터 닦기 시작했다.
서가에 꽂혀있는 책 중에서 ‘라빈드라나드 타고르의 생애와 사상’이라는 책이 나의 눈길을 유혹한다.
나는 그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물수건을 손에 든 채 책을 빼어들고 라빈드라나드 타고르와 데이트에 빠져들었다. 1913년 동양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인도의 시성 타고르는 특히 우리나라에 대해서 ‘동방의 등불’이라는 시를 헌정하여 암울했던 우리나라의 일제치하에 독립의 희망을 주었던 시인이기 때문에 더욱 친근감이 드는지도 모르겠다.
만해 한용운은 지극히 종교적인 색채를 띠고 있는 타고르의 명상시 '원정(園丁)' (The Gardener)을 읽고 “옛무덤을 깨치고 하늘까지 사무치는 백골의 향기”라고 평했다.
만해에 의하면 현실을 떠나 영원한 피안의 세계를 노래하는 타고르의 시는 그것이 아무리 아름답고 경건한 것이라 하더라도 결국은 절망의 노래요, 죽음의 노래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의 시는 치열한 삶을 영위하는 생존의 노래가 아니고 관념의 노래라고 평했다.
그러나 오늘 만나게 된‘타고르의 생애와 사상’에서 나는 만해가 말한 절망과 죽음을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
오히려 봄을 기다리면서 오늘 만난 라빈드라나드 타고르는 젊음과 청춘, 그리고 아름다운 자연을 진정한 심미안과 철학으로 노래하고 있었다. 또 다시 나는 눈을 뜬다. 밤은 거의 다 가고/ 세상의 꽃잎이 벙근다./ 이는 뭐라 말할 수 없는 끝없는 놀라움….
그의 나라인 인도의 기후에 혹한의 겨울은 존재하지 않지만 봄이 오는 길목에서 데이트를 신청한 나에게 그는 봄에 대하여, 미래에 대하여 찬미가를 불러주었다. 어둠과 침묵의 밤이었던 추운 겨울은 이제 지나가고 꽃잎이 벙그는 봄의 도래를 끝없는 놀라움과 환희로 들려주었다.
타고르는 그의 고향에 ‘봄의 계절축제’인 식수제(植樹祭)와 경작제(耕作제)를 만들었다고 일러준다. 음악과 춤과 베다의 낭송으로 꾸며진 소박하고 예술적인 의식을 겸한 그림과 같이 아름다운 이 축제는 자연의 풍요를 기원하고 영원히 소생하는 젊음을 상징하는 것으로 지금까지 해마다 개최되어 온다고 한다.
숲을 사랑한 타고르는 ‘숲의 소리’라는 시집을 발간하기도 했다. 나무들이나 꽃들을 노래하고 또 그러한 생명과 관계를 갖는 사계절을 각각 노래한 시를 모은 것이다.
자연을 지극히 사랑하는 그의 정서에 공감하는 독자로서 나도 라빈드라나드에게 화답하는 문집 한권 발간하여 헌정하고 싶은 꿈을 꾸어본다. 인도의 시성(詩聖)라빈드라나드 타고르에게 나의 마음속에 피어나는 초록의 잎과 보랏빛 꿈 조각을 헌정하고 싶은 것이다.
태양의 고도가 조금씩 높아지고 겨울에서 봄을 알리는 별자리로 바뀌고 있다.
얼어붙은 하늘에 육각의 다이아몬드처럼 빛나고 있던 겨울하늘의 별자리가 봄을 알리는 부드러운 대곡선 별자리로 바뀌고 있다.
대곡선 별자리는 봄밤의 하늘에 나타나는 별자리인데 북두칠성의 손잡이 끝별에서 시작하여 처녀자리의 가장 밝은 별인 스피카라는 별을 잇는 부드러운 곡선형의 별자리이다.
밝아진 햇빛과 부드러운 별빛을 받고 있는 봄의 대지에 축제를 열어야겠다.
식수(植樹)의 축제와 경작(耕作)의 축제를 열어야겠다. 만물이 새 옷을 갈아입는 이 봄에 일일신(一日新)하는 참신한 마음 한 포기 대지에 심어야겠다. 이해와 소통의 싹을 틔워 조화의 공존의 향기가 넘치는 꽃을 피워야겠다.
봄맞이 청소를 마치고 서가 옆 테이블에 히아신스 꽃 화분을 옮겨놓았다. 어쩌면 라빈드라나드 타고르 시성(詩聖)께서 히아신스 향을 흠향하고서 보답으로 남국의 자카란다꽃 향기를 전해줄지 모르겠다고 생각해보았다.
소현숙 전북 여약사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