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4-03-29 09:21 (금)
눈 내리는 소리
상태바
눈 내리는 소리
  • 전민일보
  • 승인 2017.02.10 10:04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실명한지 얼마 안 되었던 어느 겨울이었다. 금방 눈이라도 내릴 것 같은 찌푸린 날씨에 잘 아는 어느 여류화가와 함께 전주 중바우산에 있는 천주교 성지에 갔었다.

성지에 가기 위해 그리 높지 않은 중바우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그 산은 나지막하고 바위가 많다고 해서 중바우산이라고 불리어지고 있었고, 화가 선생님과 함께 오르는 산길은 걷기에 그리 어렵지 않았다.

중간쯤 오르는데 머리 위로 무엇인가 툭툭 떨어지기 시작했다.

“뭐가 내리나 보네요.”

나는 하늘을 올려보며 말했다.

“눈이 내리기 시작하네요.”

그 분이 대답했다.

조금 더 올라가니 위에서 떨어지는 물체들은 더욱 많아지고 있었다.

겨울이었고 눈이 내리는 쌀쌀한 날이었기 때문에 산을 오르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우리가 산길을 걸어 올라갈 때 주위는 너무도 고요했다. 오직 걷고 있는 발자국소리와 무엇인가 떨어지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나는 조용히 걸어 올라가면서 들리는 소리에 집중했다. 귓가에는 ‘사악 사악’하고 무엇인가가 나무들 위로 내려앉는 소리가 들렸다. 조금씩 그리고 더욱 자주 그 소리는 들려왔다. 셀 수 없이 많은 가벼운 물체들이 산의 나무들 위에 살며시 쌓이는 소리였다. 바로 눈이 내리는 소리였다. 그 소리는 선명하게 들려왔다.

나는 그 선생님께 “눈 내리는 소리가 들리네요!” 하고 말했다. 그러자 “무슨 소리예요? 나에게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데요.” 하고 주위를 들러 보며 대답했다.

나는 물었다. “솔잎 위로 내리는 사악 사악하는 눈 내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으시나요?” “아니요, 그저 눈만 내리는 것이 보일 뿐이에요.” 그 분의 대답이었다.

그때 나는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듣고 있는 이 눈 내리는 소리는 나만이 들을 수 있는 소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이 조용하면서 아늑하고 부드럽게 눈 내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에 감사했다.

화가선생님은 나에게 말한 것처럼, 눈으로 보이는 사물로 인해서 그 아름다운 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말이 실감이 났다.

절대자인 하느님께서는 분명 육적인 시각 이상으로 하늘에서 부드럽게 내려앉는 자연의 아름다운 소리를 들려주시는 것이었다. 소리는 참으로 아름답고 많은 상상력을 전해준다.

소리를 통해서 보이는 사물을 파악할 수 있고, 그 움직임과 심지어 그 내면의 마음까지 읽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소리를 통해서 편안하게 주변을 느끼고 볼 수 있기 까지는 적지 않은 적응의 기간이 필요했다.

소리뿐만 아니라 다른 감각도 마찬가지이다.

실명한 그 다음해 어느 봄날이었다. 한 자원봉사자가 봄꽃이 너무 아름답다고 바깥 나들이를 가자고 해서 같이 덕진공원에 갔던일이 있었다.

공원 안으로 들어가자 코 끝에 여러가지 꽃향기가 진하게 다가왔다. 자원봉사자는 내손을 어느 꽃잎에 대주었다.

“진달래꽃이에요” “분홍색 꽃이 너무 아름다워요” 하며 그 꽃을 설명해주었다.

난 실명 전에 보았던 예쁘고 커다란 진달래꽃을 연상하며 꽃잎을 조심스레 만져보았다. 순간 깜짝 놀랐다. 내가 만진 것은 내가 생각하고 있었던 그 꽃이 아니었다. 그저 차가운 물체였다. 다시 한번 만져보았다.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으나 그저 차가운 물체가 만져지는 것이었다.

너무나 실망스러웠다. 눈으로 보았던 꽃의 아름다움은 온데 간데없고 우아하고 부드러운 것이 아닌 차가움뿐이었다. 실망과 충격이 온몸을 휩쓸었다.

본다는 것과 만져서 느낀다는 것이 얼마나 다른것인지 실감하게 되었던 일이었다.

그러나 그 이후 적응이 된 뒤로는 목련꽃을 만지면 연한 향기가 느껴지면서 부드러운 꽃잎을 느끼고 눈앞에는 하얗고 우아한 목련꽃이 그대로 떠올랐다.

또한 소리를 통해서 주변의 상황과 내면의 마음을 알 수 가 있게되었다.

예년에 비해 유난히 눈이 많이 내리는 겨울철이다.

우리는 눈내리는 소리를 들으며 하얗게 온누리를 덮고 있는 겨울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지금도 나에게는 그 아름다운 눈내리는 소리가 들리듯 우리와 함께 하는 사람들의 사랑의 모습이 들려온다.

송경태 전북시각장애인도서관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사막의 별 2017-03-03 02:00:19
그래, 눈내리는 소리라도 들을 수 있으니 좋네요. 저도 엣날 시골에서 눈 내리는 소리를 듣고 싶어 간혹 겨울이면 시골에 가곤 한답니다. 눈이 내려면 그 옛날 생각이 많이 나네요.

주요기사
이슈포토
  • 청년 김대중의 정신을 이어가는 한동훈
  • 신천지예수교 전주교회-전북혈액원, 생명나눔업무 협약식
  • 남경호 목사, 개신교 청년 위한 신앙 어록집 ‘영감톡’ 출간
  • 우진미술기행 '빅토르 바자렐리'·'미셸 들라크루아'
  • '여유 슬림컷' 판매량 급증! 남성 건강 시장에서 돌풍
  • 옥천문화연구원, 순창군 금과면 일대 ‘지역미래유산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