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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월에서 만난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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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월에서 만난 낮달
  • 전민일보
  • 승인 2017.02.08 10: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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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멀리 여럿 날 계획을 세워 여러 사람이 떼 지어 떠나는 것보다 어느 날 불쑥 홀로 가는 것도 나름 의미가 있다.

머리를 골똘하게 세워 써야 할 글속에 빠져 방학을 대부분 보냈더니 몸이 근질근질하기 시작했다. 몇 해 전 다녀온 담양에 있는 창평 슬로시티 마을과 무월마을이 기억 속에서 반들거렸다.

전주에서 순창까지 국도를 시원스럽게 뚫어 생각보다 그렇게 먼 거리도 아닌데다, 겨울 날씨답지 않게 햇살이 촘촘하여 결심이 시들해지기 전에 차를 몰았다.

순창에 들어서자 점심때가 되어 식당에 들러 허기를 달랬다. 어디가나 혼자서 먹는 밥은 내 돈을 내고도 주인 눈치를 보며 먹어야 하는 눈칫밥이 되기 일쑤이다.

서둘러 밥을 먹고 담양으로 향했다. 우람한 자태로 길 양쪽에 서 있는 메타스퀘어는 잎 몇 개씩만 달고 있는데도, 숲처럼 거대하였다. 저렇게 거목이 되는 동안 나무는 얼마나 많은 시간동안 바람을 품고 살았을까. 때로는 바람에 맞서지 않고 바람결대로 몸을 비틀었을까.

창평 슬로시티 마을은 옛 것을 잘 보존하고 있다. 정겨운 담과 흙길, 마을길을 따라 돌고 도는 개울물, 오래된 고 씨 고가 몇 채. 유일하게 한 채 있는 일본식 목조주택은 커피 집으로 변신해 있었다. 홀로인 길손을 꽤 미녀인 주인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평일이라서 그런지 사람이 별로 없어 적막이 한적한 풍경과 봉합되어 산중 같았다. 낭창한 남도 말씨로 안으로 들어오라는 안내를 받고 오래된 목탁 앞에 앉았다. 앞마당에 있는 감나무에 까치밥이 하나 달려 있었다.

어색한 분위기를 바꾸려고 언제부터 문을 열었냐고 묻자, 오늘로 딱 일 년 되었다고 했다. 시킨 커피 외에 엿, 강정, 찹쌀떡을 내왔다. 커피 잔이 바닥을 보일 즈음 덤으로 반잔쯤 채워주고서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다.

전주에서 왔다고 하자 잘 아는 언니가 전주 모 동에 산다고 하면서, 전주는 사람살기 좋은 곳 같다고 했다. 어디든 사람살기 좋지 않는 곳이 있겠는가. 사는 게 팍팍할 때 불러낼 사람 한둘 있고, 이런저런 넋두리를 쏟아내도 귀찮게 여기지 않고 쏟아낸 말 차곡차곡 귀담아 들어 줄 이 하나만 있어도 다 살만한 곳인 걸.

슬로시티 마을에서 무월은 10여 분 정도 걸려 마을을 꼼꼼히 돌아볼 요량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예스럽고 고풍스러운 것에 애착을 느끼는 것은 나이를 먹어 가는 것과 비례하는 것 아닐까. 흙냄새와 토담, 이끼 낀 기와와 돌담, 담을 끼고 흐르는 실개천이 여러 번 발목을 잡았다. 창평 면사무소는 과거 ‘창평현청’이 있던 자리에 얼마 전 전형적인 한옥으로 새로 짓고 아예 ‘昌平縣廳’이라 써붙였다.

입구 한 쪽에 ‘창평면사무소’란 표식이 있지만, ‘昌平縣廳’이란 위세에 눌러 기를 쓰지 못했다. 하기야 이름이 얼마나 대수이겠는가. 사람이나 짐승, 자연할 것 없이 이름에 걸맞게 살려고 몸부림치는 것이 아름답지 않겠는가.

무월, 처음 이 말을 대했을 때 달과 무관한 마을로 오독했다. 그런데 마을동쪽에 있는 망월봉에 달이 뜨면 신선이 달을 어루만진다 하여 붙인 이름이라니 달빛이 얼마나 아름다우면 무월이라 했으랴.

몇 해 전 왔을 때와 달리 마을 입구에 소슬대문을 커다랗게 만든 것 외에는 지난 풍경 그대로였다. 무월마을을 상징하는 것은 이름과 달리 돌담이다. 슬로시티 마을 돌담이 자연스러운 반면에 무월마을 돌담은 마을가꾸기 사업 일환으로 만들어 인위적이다.

그런데 돌 자체가 자연물이라 눈 밖에 나지 않고 눈에 딱 달라붙어 포근하기까지 하다. 그리고 집집마다 붙인 문패를 사람 손으로 일일이 직접 파서 만든 작품이고, 대문이나 공간 하나하나를 예술적으로 작품화하였다. 무월마을은 지붕이 없는 거대한 미술관이나 다름이 없다.

마을을 한 바퀴 돌아 주차장으로 내려오다 서쪽 하늘에 석양이 장미처럼 피는 것을 보았다.

그 풍경을 사진에 담고 돌아서는 순간 제법 살진 낮달을 보았다. 생각하지 않았던 일이 닥치면 당황하기 마련인데, 낮달은‘무월’이란 이름을 배경삼아 숨 가플 정도로 설레게 떠 있었다. 손전화를 꺼내 낮달 표정을 집어넣자 지레 놀란 까치가 울어댔다. 그리고 그리움이 조곤조곤 밀려왔다.

“산등성이 넘은 댓바람/ 돌담에 눈발처럼 쌓이고/ 겨울 해 붉은 꽃으로/ 어쩔 수 없이 진 허공/ 그 길 따라 오던 낮달/ 까치집 대문 두드린다// 산맥 몇 개쯤 거슬리고/ 돌담 몇 번쯤 넘어서야/ 당신 마음에 낮달처럼/ 휘영청 떠 있을 수 있으랴/ 무월에서 낮달을 만나듯/ 당신 눈빛 곱게 만나랴.”(졸시, ‘무월에서 낮달을 만나다’ 전문)

최재선 한일장신대 인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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