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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유년의 설날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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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유년의 설날 추억
  • 전민일보
  • 승인 2017.01.26 10: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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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대명절 설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깡촌의 나의 유년시절, 설날 며칠을 남겨놓고 열심히 손가락을 꼽았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다섯 밤만 자면 설날이다. 다음날 다시 손가락을 꼽았다. 하나, 둘, 셋, 넷. 네 밤만 자면 설날이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그렇게 손가락을 꼽다가 설 하루 전 섣달그믐날이 되면 이제 한 밤만 자면 설날이라는 들뜬 마음에 잠을 쉽게 이룰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음력 섣달 그믐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된다는 말에 바짝 긴장하여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이런 속설은 이날 밤만큼은 잠을 자지 말고 음식을 장만해야 하고, 귀한 손님이 오면 마중을 나가야 된다는 맥락으로 이해된다.

만약 누군가 잠이 들면 그의 눈썹에 떡가루를 칠해놓고 눈썹이 하얗게 변했다고 놀리곤 했다.

설 전날 가마솥에 군불을 지펴 물을 데인 다음 그 물을 대야에 받아 손발의 묵은 때를 돌로 문질러 벗겨냈던 일이 있다.

목욕탕이 없는 산골에서 이러한 목욕 방식은 거의 집집마다 행해졌다. 또 설 며칠 전 할머니가 사다 준 운동화를 신고 잠시 밖에 나가 놀다 돌아와서 다시 운동화 밑바닥을 물로 씻고 걸레로 닦아 신문지에 싸서 장롱 속에 모셔놨던 일도 있다. 이런 가난한 시절의 빛바랜 추억은 이제 먼 옛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당시 섣달그믐날 밤이면 농악단이 동네 집집마다 굿을 쳤다.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오는 농악소리는 온 동네가 떠나갈 듯 요란했다.

그 굿판의 꽁무니를 관솔불(송진이 엉킨 소나무 가지)을 치켜들고 칠흑의 어둠을 가르며 또래 수십 명과 소리지르며 따라다녔다. 그믐밤 어쩌다 눈이라도 내리면 마음이 들떠 더욱 신명이 났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호롱불을 켜고 살았던 깡촌에서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 밤새 굿판을 따라다녔던 추억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어린 시절 손가락을 꼽으며 설을 기다렸던 이유는 다른데 있지 않다. 여러 가지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을 수 있다는 점과 새 옷을 입는다는 기쁨, 그리고 부모님이나 웃어른께 세뱃돈을 받을 수 있다는 소망 때문이었다.

가슴 설레던 설날 아침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세배다.

세배는 새해를 맞아 부모님이나 웃어른께 인사를 드리는 것으로 우리민족 세시풍속의 하나이다.

내가 초등학교 때 친구들과 집집마다 세배를 다니던 기억이 새롭다. 부잣집을 가장 먼저 찾아가 세배를 하기도 했다. 그래야 세뱃돈을 많이 받을 수 있으니까.

설빔을 곱게 차려 입고 어른들을 찾아다니며 세배를 하고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복 많이 받으시기를 기원한다.

그러면 어른들은 맛있는 음식을 한상 가득 차려주고 “많이 먹어라. 나이가 몇이고 뉘집 아들이냐, 공부 잘 해라.”는 등의 덕담을 해주곤 했다.

세배를 하면 어김없이 세뱃돈이 쥐여졌다. 그 당시(1960년대 후반) 세뱃돈으로 1원짜리 동전 몇 개, 조금 여유 있으면 10원짜리 지폐를 주기도 했다.

당시 1원이면 왕사탕 5개를 주었으니 10원의 가치는 상당히 컸었다. 웃어른께 세배를 하고 세뱃돈을 받을 땐 설날이 그 어떤 날보다 행복하게 느껴졌던 유년의 추억.

하루 종일 세뱃돈으로 모은 몇 십원, 그 돈을 나만 아는 은밀한 곳에 꼭꼭 숨겨놓고 하루에도 몇 번씩 꺼내 세어보곤 했던 빛바랜 추억이 그립다.

명절과 가족, 그리고 정(情)으로 대변되는 이 감정의 편린은 몇십 년을 두고 소중히 간직해온 것이기도 하다. 나 뿐만은 아닐 것이다.

이런 어린 시절 명절의 설렘과 기다림은 누구에게나 좋은 추억으로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요즘 명절은 그런 시골의 향수가 없어 아쉬움이 많다. 그렇다고 사라지는 풍속을 억지로 살리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생활방식의 변천에 따라 없어지기도 하고 새로 생기는 것이 문화다. 다만 오랜 세월 이어온 설 풍습이 오래오래 한민족의 전통으로 남아있기를 바랄 뿐이다.

올 설 명절은 유난히 썰렁하다. 대통령 탄핵정국으로 인해 나라가 혼란에 빠지고, 가뜩이나 어려운 경기침체가 장기화 되면서 사는 게 더욱 힘들어진 탓에 귀성을 포기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기에 그렇다. 그래도 설이다.

일상의 궤도에서 벗어나 고향으로 달리는 마음은 어느 때보다 넉넉하고 따뜻하다.

세상이 꽁꽁 얼어붙는다 해도, 치솟는 물가에 서민들의 고충은 더해만 가도 사람들은 새해 선물 보따리를 싸들고 고향으로 향한다.

그곳에는 부모님과 친지들이 있고 언제나 포근하고 정다운 고향이 있기 때문이다.

신영규 월간 수필과비평 홍보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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