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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치미 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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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치미 떼고 싶다
  • 전민일보
  • 승인 2017.01.13 09: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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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설날의 일이다. 성묘를 마치고 고향집을 둘러보며 추억여행을 하고 돌아왔다.

마당을 한 바퀴 돌아보다가 빈 닭장을 들여다보았다. 닭장을 들여다보며 어느새 유년시절로 돌아갔다.

설 전날 머슴아저씨가 닭장에 들어가 가장 큰 닭 한 마리를 들고 나온다. 아저씨는 숫돌에 칼을 갈고 가마솥에서 끓는 물을 한 대야 준비한다. 닭털을 뽑고 배를 갈라 내장을 손질하고 모래집의 노랗고 질긴 막을 벗겨내어 깨끗한 물에 헹구면 닭 잡는 과정이 끝났다.

그 닭은 할머니가 장에 가서 병아리를 사다 키운 닭이었다. 할머니는 병아리를 사오면 며칠간은 병아리상자를 안방 윗목에 두고 물과 모이를 주면서 길렀다.

보송보송한 병아리의 솜털이 점점 뻣뻣한 깃털로 바뀌며 병아리는 다리도 길어지고 꽁지깃털도 길게 자라났다. 병아리는 중병아리가 되어 닭장에서 자라며 낮에는 채마밭사이를 돌아다니며 벌레도 잡아먹고 무럭무럭 커갔다. 병아리들은 앞집 담장아래 물고랑으로 자주 나들이를 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앞집 울밑으로 넘어간 우리 집 병아리를 그 집 주인이 모두 자기 집 닭장에 가두었다. 할머니는 발을 동동 구르며 병아리를 돌려달라고 했지만 앞집주인은 막무가내로 자기네 닭이라고 우기며 돌려주지 않았다.

다음 날 장에 다녀오신 할머니는 보자기를 풀어 종이봉지에 담긴 꽃자주색, 초록색 가루 물감을 꺼내셨다. 양재기에 물감을 갠 후 닭장에 가서 병아리 꽁지 깃털에 알록달록 물을 들였다. 병아리 꽁지에 염색을 해서 우리 병아리라는 것을 표시한 것이었다.

그런데 꼬리를 물들인 병아리들은 여전히 앞집 울밑을 넘어가서 놀았고, 앞집 주인은 병아리가 울밑으로 넘어오면 알록달록 물든 병아리의 꽁지 깃털을 싹둑 잘라버리고 닭장에 가두어 자기네 병아리라고 우겼다.

할머니는 병아리 찾는 것을 포기하고 다시 장에 가서 병아리 한 상자를 사다 기르셨다. 그 병아리가 중병아리가 되면 꽁지 깃털에 알록달록 물들이는 일도 잊지 않고 계속 하셨다.

앞집에서 병아리꽁지 깃털을 잘라서 자기네 것이라고 우긴 사건은 '시치미 떼기' 였다. 원래 시치미 떼기 라는 말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단백질 섭취가 어렵던 시절, 사람들은 직접 사냥을 해서 육류를 구했다. 날쌘 매를 이용하여 사냥을 했는데 문제가 있었다.

사냥감을 찾아서 날아갔던 매가 꼭 주인집으로 찾아온다는 보장이 없었다. 그래서 매의 발목에 주인의 이름표를 달았는데 그것을‘시치미’라고 불렀다. 그런데 매가 다른 집으로 날아가서 그 집 주인이 매의 이름표인 ‘시치미’를 떼면 주인을 가려낼 방법이 없었다.

‘시치미를 떼다’라는 낱말을 생각하니 빙그레 미소가 지어졌다.

고옥을 한 바퀴 돌아보고 앞집 울밑도 바라보며 올해는 시치미 떼는 추억을 만들어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봄이 오면 마당에 호박 모종을 심어 호박덩굴이 앞집 담장을 넘어가 그 집 담장 아래로 호박이 열려 앞집 주인이 두어 개 따먹어도 시치미 떼고 모른 체 해주고 그 집 감나무 가지가 우리 집 담장을 넘어와 감이 열린다면 감 한 두개는 시치미 떼고 따먹어 볼까 한다.

그리고 그 집 마당에서 민들레 씨앗이 날아와 우리 마당에 노란 민들레꽃을 피우면 시치미 떼고 예쁜 꽃을 감상해야겠다. 앞집 대추나무와 자두나무 가지에서 지저귀는 새들의 노래도 담을 넘어 들려오면 우리 집 마당에서 들리는 새소리 인양 즐겨야겠다.

그런데 시치미 떼기의 진수는 뭐니 뭐니 해도 가족이나 지인들을 위하여 깜짝 이벤트를 벌여놓고 먼발치에서 시치미 떼고 살짝 웃는 일일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소현숙 전북도여약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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