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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의 충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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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의 충고
  • 전민일보
  • 승인 2017.01.11 10: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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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날마다 누가 이렇게 똥을 싸고 가는 거야.”아버지께서 또 집안에 누군가 싸고 간 똥을 치우고 계신 모양이다. 아마 바람이 뒤척일 때마다 실눈을 뜬 똥냄새가 바람을 타고 종이비행기처럼 날아다녔을 것이다.

겨울은 사람 체온만 떨어뜨려는 것이 아니라 산중에 사는 산짐승들 몸도 차게 만든다.

요즘 출근하려고 현관을 나서면 집으로 통하는 정원 잔디밭에 간밤 산짐승이나 들짐승이 똥을 싸놓는 일이 늘었다. 고라니 똥은 환약처럼 둥실둥실하여 귀엽게 생긴 데다 냄새가 별로 나지 않는다. 들고양이 똥은 사람 것과 별반 차이가 없고 냄새가 상당히 역하다.

새벽기온이 영하권에서 꿈쩍하지 않고 잠든 터라 녀석들이 눈 똥은 대부분 단단하게 얼어 있다.

그래서 쓰레기 줍는 집게로 똥을 집어 정원에 있는 나무 주변에 던져 놓는다. 문제는 설사를 한 똥이다. 설사를 하고 간 녀석은 분명히 속이 편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난 연말에 이런저런 모임이 많았다. 직장 동료, 문학회회원, 초등학교 동창생, 학과 교수, 졸업생 사은회, 교수퇴수회에 이르기까지 일주일에 네댓 번을 밖에서 밥을 먹었다. 이런 모임이 있으면 성격상 분위기를 주도하는 편이라 다른 사람에 비해 말을 많이 하는 편이다. 인문고전 시간에 학생들에게 『논어』를 강의하면서 “말을 적게 하고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정작 필요 이상으로 말을 많이 하는 편이다.

모임이 끝나고 나서 곰곰이 생각해 보면, 과분하게 말을 많이 한 것 때문에 후회한다. 나름대로 어색한 분위기를 전환시키거나 머쓱한 상황을 친밀하게 만들려는 의도로 한 것이지만, 한 말은 이미 엎질러진 물 꼴이 되고 만다.

글은 쓰고 나서 퇴고를 하면서 잘잘못을 판단하고 분석하여 잘못 쓴 것을 고칠 수 있다. 그러나 말은 한 번 입밖으로 나가면 다시 거둬들일 수 없다. 문단속은 외출할 때 잘하면 되지만, 입단속은 집안이나 집밖에서 항상 잘 해야 한다.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하다 어법을 잘못 쓰면 그냥 넘기지 않고 간섭하는 편이다. 국어를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직업정신’이 발동한 탓이다.

우리국어는 경어법이 발달해 있다. 그래서 지식인도 사물에 꼬박꼬박 존칭을 쓸 때가 많다.

예를 들어 “겨울이 오셔서 날씨가 추우시다.”와 같은 표현이다. 문학적인 표현으로 쓴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글이나 말에서 쓴 사례이다. 외국인이 우리국어를 배울 때 가장 힘든 것이 경어법이라고 한다.

외국에서 시집온 한 여성이 시어머니 머리에 파리가 앉아있는 것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어머니! 머리님 위에 파리님께서 앉아 계셔요.” 누가 웃자고 만든 말일 것이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는 속담은 평소 흔하던 것도 긴하게 쓰려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민간요법에서 개똥을 약으로 쓰고 있다.

똥은 생명체가 자신을 보호하는 무기로 쓰기도 한다. 일부 애벌레는 생명에 위협을 느끼면 포식자 후각을 고통스럽게 하려고 똥을 쏟아낸다.

똥꿈은 용꿈이나 돼지꿈처럼 좋은 꿈에 속한다고 한다. 똥이 재물, 돈, 식복, 경제, 선물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온몸에 똥을 뒤집어쓰거나 똥이 가득 차 있는 곳에 빠지는 꿈을 꾸면 경제적으로 좋은 일이 생긴다고 한다. 그리고 똥을 누거나 옷에 묻히는 꿈을 꾸거나 여러 사람이 보는 데서 똥 누는 꿈을 꿔도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똥은 유용성과 긍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똥은 더럽고 냄새가 불쾌하다는 이미지를 지워내기 힘들다. “똥이 더러워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하냐.”, ‘똥값’, ‘똥배짱’, ‘똥통학교’, ‘똥파리’, ‘똥차’에서 보듯이 일상에서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고착되어 있다.

지난 연말에 모임이 늘어나면서 사람을 만나는 일이 많아지고 덩달아 말수도 물류창고 짐처럼 늘었다. 이제 와 후회지만 말문 밖으로 내보낸 말들을 다시 불러들일 수 없어 난감하다.

들고양이나 고라니가 현관 앞 진입로에다 싸놓은 똥을 주의하지 않으면 자칫 밟기 마련이다. 먹잇감을 찾으러 한밤중에 산이나 들에서 왔을 것이라는 생각이 고개를 흔들며 그들이 싼 똥이 나에게 한 마디 하는 것 같았다.

“바깥출입을 할 때 항상 몸을 삼가라.” 현관문을 나서는 순간 바깥세상이다. 땅바닥에 이물은 없는지, 밟으면 안 될 생명은 없는지, 조신하라는 것이다. 하물며 말문으로 내보는 말도 매 한가지 아니겠는가. 앞으로 입단속 좀 잘해야겠다.

최재선 한일장신대 인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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