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4-04-20 08:35 (토)
후생가외(後生可畏)
상태바
후생가외(後生可畏)
  • 전민일보
  • 승인 2017.01.06 10: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퇴계(退溪)는 1501년, 율곡(栗谷)은 1536년생이다. 퇴계가 58세, 율곡이 23세 되던 해 두 거목의 만남이 이뤄진다. 갓 결혼한 율곡이 성주목사로 있던 장인에게 인사드리고 외가인 강릉으로 가던 도중에 퇴계를 찾은 것이다.

3일간 이뤄진 이 만남은 한국사에서 감동적 장면 중 하나로 남아있다. 이때 율곡은 퇴계에 대한 존경의 맘을, 퇴계는 후학에 대한 따뜻한 애정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율곡이 떠난 뒤 퇴계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공자께서 후학이 두렵다고 하셨는데 내가 이 젊은이를 만나보니 성현의 말씀이 틀리지 않았구나.”

외람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퇴계의 말을 실감하게 되는 것은 내세울 것 없는 나도 그렇다.

점점 내게 가르침을 주는 대상이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진취적 기상과 도전정신은 말할 것도 없고 앎에 있어서도 후배들에게 부족한 부분을 실감한다. 때로 그들의 오만함과 파격마저도 미덕으로 보인다. 후학이 선배를 대하는 방식은 그래서 다양하다. 율곡이 퇴계에게 보인 존경의 맘과는 또 다른 형태로 후배는 선배의 라이벌이 된다. 퇴계와 율곡의 학문이 그렇듯.

[황무지]를 쓴 시인 T. S. 엘리엇은 이렇게 얘기한다.

“단테와 셰익스피어가 세상을 양분한다. 둘 사이에 세 번째 인물은 없다.”

엘리엇의 이 수사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의 문제와는 별개로, 이에 결코 동의할 수 없는 한 인물이 있다. 바로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다. 사가(史家)들에 따라선 단테를 최후의 중세인, 페트라르카를 최초의 근대인이라 얘기한다. 1265년생인 단테와 1304년생인 페트라르카.

두 사람의 나이차가 39세이니 퇴계와 율곡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퇴계와 율곡처럼 두 사람도 한 번 만남을 가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이후 전개된 양상은 퇴계와 율곡의 그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페트라르카에게 단테는 오만하고 무례한 기성세대의 전형이었기 때문이다.

단테가 페트라르카에게 선물한 것이라면 그것은 ‘단테의 명성을 넘어서는 시인이 되겠다.’는 한 젊은이의 결의뿐이었다.

페트라르카는 친구 보카치오가 [신곡]을 읽어봤냐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그 책을 가져본 적도 읽은 적도 없다.”그러자 보카치오가 물었다. “그 유명한 책을 읽지 않은 것은 자네의 시기심 때문이 아닌가?”그러자 페트라르카는 3가지 근거를 들어 반박한다.

“첫째, 베르길리우스를 시기하지 않는 내가 단테를 시기할 리 없다. 둘째, 단테의 작품에 무심했던 건 다른 작품을 수집하느라 그리 된 것일 뿐 다른 이유는 없다. 마지막으로 이탈리아 문학에서 단테의 명성을 인정하지만 나는 단테와는 달리 무지한 대중의 찬양에는 관심이 없다.”

페트라르카의 이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할까. 정말 그에게 단테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을까.

진실은 당사자만의 몫이지만 적어도 제 3자의 눈에 보이는 한 가지는 있다.

강한 자존심과 더불어 그에 걸맞은 존재감이다.

1341년 페트라르카는 로마 카피톨리움 언덕에서 월계수 관을 쓴 최초의 ‘계관시인’이 된다.

그리고 단테에게 베아트리체가 있듯이 페트라르카에게는 라우라가 있었다.

그가 영원한 마음 속 연인 라우라를 위한 연시를 묶어 출간한 시집 [칸초니에레]는 본래 ‘시집’이라는 보통명사였지만 이후 고유명사가 된다. 라틴어만이 정통이던 시절 단테는 이탈리아어로 [신곡]을 써 대중에게 문학의 향기를 전달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페트라르카는 단테가 만든 다리를 건너 새로운 세계를 안내하는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그래서 베아트리체가 천상의 여인이라면 라우라는 우리 곁에 존재하는 현실의 여인이다.

퇴계와 단테, 그리고 율곡과 페트라르카. 두 사람의 선배와 두 사람의 후학은 시간과 공간의 간극만큼이나 서로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분명했다. 그럼에도 부정할 수 없는 한 가지는 그들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후대의 모범이 될 만한 라이벌로 남았다는 것이다.

후생가외(後生可畏)를 얘기할 후배가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도 성공한 인생 아니겠는가.

장상록 칼럼니스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신천지예수교 전주교회-전북혈액원, 생명나눔업무 협약식
  • '2024 WYTF 전국유소년태권왕대회'서 실버태권도팀 활약
  • 이수민, 군산새만금국제마라톤 여자부 풀코스 3연패 도전
  • ㈜제이케이코스메틱, 글로벌 B2B 플랫폼 알리바바닷컴과 글로벌 진출 협력계약 체결
  • 맥주집창업 프랜차이즈 '치마이생', 체인점 창업비용 지원 프로모션 진행
  • 스마트365잎새삼, 스마트팜을 통해 3년간 확정 임대료 보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