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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듭달의 사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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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듭달의 사색
  • 전민일보
  • 승인 2016.12.09 09: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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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를 마무리하는 매듭달입니다. 바람이 차지만 볕이 좋은 휴일 오후, 단풍나무숲을 소요하였습니다. 갑자기 찾아온 한파에 단풍잎은 낙엽이 되어 단풍나무아래 대지를 별처럼 수놓고 있었고, 아직도 고운 단풍잎 몇 장은 오헨리의 마지막 잎새처럼 추위를 이겨내며 단풍나무의 존재를 알리고 있었습니다.

상엽홍어이월화(霜葉紅於二月花)라! 봄꽃은 청초하면서도 매혹적인 아름다움으로 다가오지만, 서리에 물든 단풍잎은 완성된 미의 아름다움으로 다가옵니다.

꽃술의 꿀이나 향기로 벌과 나비를 불러들이는 고혹적인 미의 다툼이 아니고, 감미로움과 향기가 모두 배제되었지만 완성의 색조미를 온몸으로 발산하는 절대적인 아름다움입니다. 단풍나무숲에 들 때 마다 만해선사의 '님의 침묵'을 낭송해봅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만해선사의 단풍나무숲 발자취를 헤아리며 선사가 들려주는 '차마 떨치고 가야 할' 단풍나무숲의 여정을 들었습니다. 엄동설한에도 꽃눈과 새 움을 만들어야 하고, 꽃샘추위에 푸른 잎을 피워내고, 그 푸른 잎을 폭염과 폭우, 폭풍에 연단시켜 풋물을 우려내어 계절을 다 이룬 만추의 날에 화엄(華嚴)의 천의(天衣)를 드리우고 있었습니다. 천수만수(千手萬手)의 손짓으로 부르고 있는 그 단풍나무숲은 낙원이 극치(極致)를 이룬 극락의 숲이었습니다. 극락이었고, 이상향이었기에 선사는 제반의 사념을 버리고 '차마 떨치고' 새 희망을 향하여 그 길에 들어선 것이었습니다.

석양이 단풍나무숲속에 비쳐듭니다. 선홍빛의 단풍잎이 석양의 화살 같은 빛을 받아 실핏줄이 드러나고 속살이 말갛게 드러납니다. 풋내를 우려낸 성정(性情)에 열정과 온화의 밝은 빛이 가득 찬 품격을 보여줍니다. 지난(至難)했던 광음(光陰)을 보내고 초겨울의 동산을 수놓는 단풍잎은 삶의 노화가 아니고 삶의 완성이었습니다.

삶을 마무리하는 임종의 시기에 '다 이루었다.'는 평온한 표정으로 가신 분들의 모습에서 단풍잎의 색조를 읽은 적이 있었습니다. 엊그제 후배의 모친상에 조문을 다녀왔습니다. 아흔 넷의 춘추(春秋)를 누리고 영면하신 고인의 영정사진에서 속살이 말갛게 드러난 고운 단풍잎의 모습이 겹쳐 보였습니다. 후배의 모친께서는 피안의 새로운 하늘아래 파종될 씨앗을 고이 감싸 안고 날아갈 듯 한 자태로 사진틀 속에서 미소 짓고 계셨습니다. 생리학적인 견지에서 보면 임종 직전에는 도파민과 엔돌핀의 수치가 최대가 되어 사실상 고통을 느끼지 않는 편안한 상태가 된다고 합니다.

단풍나무의 씨앗은 잠자리 날개처럼 얇은 막에 감싸여 있습니다. 몇해 전 겨울, 선친이 운명하실 때에도 날개 달린 단풍의 씨앗과도 같은 학(鶴)의 날개가 펼쳐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육(肉)의 것을 모두 비우고 비워, 한 모금의 물도 받아들이지 않고,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차마 떨치고' 일학(一鶴)이 되어 비상하시는 모습을 임종으로 지켜보았습니다.

한해를 마무리하는 매듭달에 이르러 단풍나무숲을 소요하면서 '다 이룬 아름다움'의 감상의 삼매에 빠져들고 '차마 떨치고 갈' 제반의 사념을 정리해 봅니다. 그리하여 올 한해를 보내면서 다사다난한 역경이 있었다면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한 연단의 기회로 삼아 슬기롭게 마무리할 꿈을 꾸면서 새 희망의 노래를 불러봅니다.

소현숙 전북여약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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