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4-04-25 15:10 (목)
무감독 시험
상태바
무감독 시험
  • 전민일보
  • 승인 2016.12.08 10: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말고사기간으로 접어들면서 학교는 마치 파장 분위기이다.

이런저런 학교행사나 공휴일로 인해 휴강한 날이 있어 시험을 한 주 늦춰서 치렀다. 지금쯤 옆 강의실에서는 학생들이 답안지를 작성하느라 정신이 없을 것이다. 볼펜 구르는 소리가 재봉틀 돌아가는 소리처럼 들려왔다.

지난 학기부터 내가 강의하는 과목은 전부 무감독으로 시험으로 치르고 있다.

처음 학생들에게 무감독으로 시험을 치르겠다고 했을 때 대부분 반대하였다. 부정행위를 하는 사람이 있어 평가에 대한 공정성을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학교 교육이념은 인성, 지성, 영성을 두루 갖춘 지도자를 길러 사회와 교회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매일 새벽기도를 드리고 화, 목, 금요일은 채플시간을 통해 예배를 드린다.

그런데 동료에 대한 불신과 무감독시험을 치르는 분위기가 성숙되지 않았다며, 학생 대다수가 무감독 시험을 치르는 데 부정적으로 생각해왔다. 공자는 『논어』에서 “잘못을 저지른 것이 잘못이 아니라 고치지 않는 것이 잘못이다.”고 했다.

교육이념과 인문고전 수업을 통해 인성을 강조하면서, 행동으로 실천하지 않는다면 쓸 데 없는 구호에 불과하다. 강의를 할 때마다 무감독으로 시험을 치르는 것은 자존감을 스스로 찾는 행위라고 강조했다.

의지가 있으면 방법을 찾지만 의지가 없으면 핑계를 찾기 마련이다.

어떤 사회나 조직을 변화시키려면 불편함과 자기희생을 감수해야 한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내가 먼저 의지를 보였다.

만약 학생이 부정행위를 하면 선생으로서 잘 가르치지 못한 데 대해 책임을 지겠다고 했다. 책임을 지겠다고 한 것은 교수직을 내려놓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학생도 그에 합당하게 책임을 지라고 했다. 바로 자퇴하는 것이다.

이런 의지와 진정성이 모여 수강생 전체가 무감독으로 시험을 치르는 것에 동의했다. 그리고 답안지에 서로 서약을 하고 시험을 치렀다.

한 사람이라도 부정한 행위를 하면 교수직을 내려놓겠다고 했지만 불안했다. 서약한대로 교수라는 자리를 내놓아야할 상황이 올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염려는 맑은 하늘을 보고 우산을 준비해야할지 몰라 걱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우리 학생들은 정말 순수하고 지혜로웠다. 고맙게도 여섯 식솔이 딸린 가난한 시인 선생 밥줄을 끊지 않았다. 종강할 때 한 학기를 돌아보며 각자가 느낀 소감을 발표하게 했다.

대다수 학생이 무감독시험을 치른 것에 대해 자부심과 자신을 믿을 수 있어 행복하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옆에 있는 동료를 믿지 못한 것이 부끄럽다고 했다. 얼마 전 한국지도자육성장학재단 장학금을 신청하려고 자기소개서를 첨삭 받으러 온 학생은 학교생활 가운데 가장 인상 깊은 것이 무감독시험이라고 했다.

배운 것을 머릿속에 가둬두면 썩은 지식이 되고 만다. 삶속에서 꺼내 행동으로 실천해야 한다.

『연어』에 나오는 은빛연어는 폭포를 만나 쉬운 길을 선택하지 않고 연어로서 가야할 길을 갔다. 우리도 어떤 길을 가야할 것인지 머리를 싸맸다. 『소유냐 존재냐』를 통해 사적인 삶을 살 것인지 공적인 삶을 살 것인지 고민했다.

『목민심서』를 통해 지도자로서 갖춰야 할 덕목을 알아보았다. 『고령화의 쇼크』를 읽고 발표하면서 고령화 시대에 어떤 목회자 사회복지사, 상담심리사, 음악가, 시민활동가가 되어야 할지 고뇌했다. 『유쾌한 혁명을 작당하는 공동체 가이드북』를 통해 좋은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관계, 소명, 유쾌, 통제가 얼마나 중요한지 공부했다.

그리고 『논어』에 나오는 공자와 제자가 나누는 대화를 경청하며 인을 실현하고 이웃과 사회, 나아가 세계와 관계를 어떻게 맺으며 살아야할지 학습했다.

그리고 “말을 앞세우지 않고 행동을 앞세워야 한다.”는 말을 주어로 삼고 수강생 대부분이 장기를 기증하겠다고 서약했다.

무감독시험을 치르고 나서 생긴 자존감과 자부심이 강물처럼 흘러 봉사하고 섬기는 마을로 흘러간 것이다.

최재선 한일장신대 인문학부 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신천지예수교 전주교회-전북혈액원, 생명나눔업무 협약식
  • '2024 WYTF 전국유소년태권왕대회'서 실버태권도팀 활약
  • 군산 나포중 총동창회 화합 한마당 체육대회 성황
  • 기미잡티레이저 대신 집에서 장희빈미안법으로 얼굴 잡티제거?
  • 이수민, 군산새만금국제마라톤 여자부 풀코스 3연패 도전
  • 대한행정사회, 유사직역 통폐합주장에 반박 성명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