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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낙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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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낙엽
  • 전민일보
  • 승인 2016.11.22 09: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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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 관장님, 구조조정 같은 거 안 하면 안 되나요?”

“무슨 소리에요, 선생님?”

“사실, 직장에서 쫓겨나게 됐어요.”

우리 아파트에서 경비원으로 근무하고 계시는 박 어르신께서 약주를 한잔 하시면서 긴 한숨을 내쉬었다.

박 어르신은 평생 동안 후진양성에 몸 바쳤다 정년퇴임하신 후에 경제생활을 계속 영위하기 위하여 경비 일을 하고 계셨다.

나는 얼마 전 아내로부터 경비절감차원으로 우리 아파트의 경비원 30퍼센트를 구조조정 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또한 구조조정에서 제외된 어르신들이 월급을 줄여도 좋으니 같이 일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청원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동료들을 내보내야하는 심정이 오죽했으면 그러셨을까 싶었다.

“나하고 같이 근무하고 있는 김 양반은 작년에 부인과 사별하고 자식도 없이 홀로 생활하고 있어요. 이곳에서 쫓겨나면 오갈 데도 없는 것 같은데 걱정이에요.”

“참 딱하네요. 박 어르신도 사모님께서 암으로 투병중이라고 들었는데요. 병세는 어떠세요?”

“저도 앞길이 막막합니다. 그러나 김 양반이 더 큰일이에요. 쥐꼬리만한 월급이지만 참 행복해 했었는데…, 아무래도 제가 나가야 겠어요.”

“뭐라고요? 어르신께서요?”

박 어르신은 김 어르신의 딱한 사정에 눈시울을 붉히시면서 자기가 먼저 나가겠다고 고집을 부리셨다.

그리고 며칠 후 나는 아내로부터 박 어르신의 퇴사 소식을 들었다.

“여보! 경비실에 근무하시는 박 어르신 있잖아요. 그만 두셨데요.”

“그래. 내가 혼자 걸어가면 먼저 와서 안내해주고 우편물도 잘 읽어주신 고마운 분이셨는데… 참 서운하네.”

“그런데 여보. 박 어르신도 사정이 참 딱하시더라고요.”

“왜? 정년퇴임하시고 연금으로 생활하시잖아.”

“퇴직금과 일시불로 받은연금은 몽땅 큰아들 사업밑천으로 대줬는데 사업이 망하고, 딸은 이혼하고 배다른 아기까지 낳았데요.”

“참, 딱하시네. 일자리는 구하셨대?”

“여기저기 알아보고 계시나 봐요.”

그런 어려운 사정이 있는 줄은 나는 짐작도 못했다.

그런 와중에서도 동료를 위해 직장을 떠나시다니, 나는 새삼 박 어르신이 위대해 보였다. 나는 박 어르신을 도울 수만 있다면 돕고 싶었다.

나는 모 노인센타에서 노인을 대상으로 영어강좌가 개설된다는 소식을 접하고 박 어르신을 적극 추천하였다.

“박 어르신, 예전에 영어선생님이셨죠? 혹시 노인센터에서 영어강사로 일하실 생각은 없으세요?”

“어휴, 된다면야 저야 고맙죠.”

나는 노인센터에 박 어르신을 소개해 드렸다. 얼마 후에 만난 박 어르신은 얼굴에 희색이 만연했다. 가르치는 일을 다시 하게 되어서 무척이나 즐거운 모양이었다.

“송 관장님,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또래들을 가르치니 정말 신이 나요.”

“참 다행이네요.”

“비록 아파트 경비원보다 월급은 적지만 마음도 편하고 보람도 느껴요.”

나는 박 어르신이 신명나고 보람 있게 제2의 인생을 사시는 것을 보고 마음이 한결 흐뭇했다.

“송 관장님, 제가 길바닥에 떨어진 쓸모없는 낙엽인줄 알았는데, 쓰레기통으로 들어갈 신세인줄 알았는데, 남을 위한 거름이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어요?”

“어르신! 어르신은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보배요, 자산이잖아요.”

“에이 무슨 말씀이세요, 늙으면 죽어야죠.”

“아닙니다. 대한민국을 발전시킨 주역이시잖아요. 더 행복한 여생을 보내셔야죠.”

“말이라도 고맙습니다. 하하하”

벌써 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우리 주변에 몸도 마음도 춥게 보내고 있는 이웃이 없는지 한번 살펴보아야겠다.

송경태 전북시각장애인도서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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