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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정녕 슬픈 계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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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정녕 슬픈 계절인가
  • 전민일보
  • 승인 2016.10.28 10: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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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깊어간다. 산과 들이 알록달록 오색 빛으로 물들어간다. 오색의 나뭇잎처럼 우리들의 마음도 엷은 우수에 물들어간다. 가을은 우수의 계절이자 철학의 계절인가?

가을은 달빛마저도 색조를 머금은 채 산자락에서 꽃으로 핀다. 강물위에서 낙조처럼 바람도 무색(無色)의 기나긴 옷을 벗는다.

가을은 세상 만물 중에 무엇이 이토록 존재의 무게로 짓누르는가. 인간은 무엇인가, 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인간 존재의 근원적 문제는 무엇일까?

조금 차분해진 마음으로 오던 길을 되돌아볼 때 푸른 하늘 아래서 시름시름 앓고 있는 나무들을 바라볼 때 ‘산다는 게 뭘까’하고 문득 혼자서 중얼거릴 때 나는 철학자가 된다.

가을은 슬픈 계절인가. 코발트빛 하늘이 왜 그리 서러울까. 불어오는 가을바람에 흐느끼는 억새들의 몸짓이 처연하다. 저 멀리 구름 한 자락 유유히 흐르고 저녁놀 수놓는 외기러기 힘겨운 날갯짓을 보면 왠지 모르게 슬프고 애잔하다.

남자는 가을이 되면 슬퍼진다. 잎떨군 나무처럼 허전하다. 떨어지는 낙엽과 이리저리 흩날리는 가랑잎을 보면서, 누렇다 못해 허옇게 바래져 누운 검불들을 보면서, 텅 빈 들판에 넝마를 걸치고 외다리로 서 있는 허수아비를 보면 괜시리 마음 쓸쓸해진다.

그래서 가을을 남자의 계절이라 했던가? 가을이면 남자는 생각이 많아지고 감수성이 예민해지나 보다.

‘춘녀사 사비추’(春女思士悲秋)라고 했던가. 여자가 봄바람이 나듯, 남자도 가을을 탄다. 그러나 여자의 춘정(春情)과 달리 남자의 가을은 슬픔이다.

‘슬픈 가을’(悲秋). 예부터 ‘비추’는 시인묵객들의 단골 시제(詩題)였다. 2000년 전 시인 송옥은 ‘초사(楚辭)’에서 ‘슬프고도 쓸쓸한 가을기운이여/초목이 떨어져 뼈만 앙상하네’라고 노래했다. ‘만리 밖으로 노상 떠도는 이 슬픈 가을이여’(‘登高’)라고 읊은 이는 당나라 두보였다. 서거정, 김시습, 이식 등 조선의 문인들도 ‘비추’라는 제목으로 시를 남겼다.

그렇다. 가을은 철학자이며, 하나의 철학적 사색이다. 산과 들과 냇가는 앙상하고 추수가 끝난 논밭엔 공허하다. 수확과 휴식, 풍요와 침묵, 생명과 죽음의 교차로에서 가을은 풍요하고 행복한 사색으로 여문다.

일찍이 플라톤은‘철학함을 죽음을 준비하는 예술’이라고 하였다. 소크라테스는 ‘철학을 한다는 것은 죽는다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로마의 스토아 철인 세네카는 ‘사는 방법은 일생을 통해서 배워야만 한다. 그리고 아마도 그 이상으로 불가사의하게 여겨지겠지만 평생을 통해서 배워야 할 것은 죽는 일이다.’라고 설파하였다. 이처럼 철학하는 사람은 인간의 죽음에 대하여 깊이 사색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스피노자는 그의 저서 에티카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전혀 죽음을 생각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자유로운 사람의 지혜는 죽음에 대한 명상이 아니라 삶에 대한 명상이다.’라고 했다.

스피노자의 죽음에 대한 정의는 하느님과 세계를 동일하게 보는 것이다. 나와 만물을 동일하게 보는 것 등에 더하여 육체와 영혼, 물체와 정신을 동일하게 보고 있다.

따라서 그는 죽음은 전체 안으로 들어가 자신을 극복하는 개별자아의 지적인 분리와 관계된다. 그러한 점에서 죽음은 더 이상 재앙을 의미하지 않는다. 개별 인간은 죽음에서 몰락하지만, 인간이 하나의 사고, 무한한 사유의 관념인 한 인간은 존속한다고 했다.

지금 온 누리에 가을색이 완연하다. 그 모습을 사람들은 슬픈 눈으로 보고 있다. 마치 누군가가 죽어 가는 모습을 보는 것처럼 말이다.

낙엽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가. 그리고 떨어진 낙엽을 밟으며 홀로 걸어보았는가. 황혼에 서벅서벅 발끝에 차이는 낙엽길은 지나온 긴 세월을 곱씹는 회상의 시간이어서 눈시울이 붉어질 것이다.

가을엔 아프지 않아도 감정에 복받쳐 눈물이 난다.

풍요의 계절이라 좋은 것도 있지만 곱던 단풍이 제물에 떨어지고 바람에 날리어 누군가의 발걸음에 밟혀 부스러져 있는 모습을 보면 왜 그런지 가슴에 구멍이라도 하나 뚫린 듯 허전하고 이유도 없이 눈물이 난다.

가을은 정녕 슬픈 계절인가?

신영규 한국신문학협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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