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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서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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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서야한다
  • 전민일보
  • 승인 2016.10.27 10: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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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크 골프장에서 만난 A씨는 70대 중반의 노인이다. 아내와 사별한 뒤 3년 동안 문 밖 출입을 안 했다고 한다. 사람을 만나 위로받는 것도 지겹고 자신이 못난 것 같아 사람들과 어울리기가 싫었다고 했다.

서서히 건강이 나빠지고 우울증이 찾아왔다. 어느 날 이러다가 죽지 싶어 문을 박차고 나왔다고 했다. 지금은 운동으로 건강과 활력을 찾았다고 하였다.

아내가 동갑 친구들과 내장산에 갔다. 다리가 아프면 못 다닌다며 할머니들이 기를 쓰고 여행을 다닌다. 말리고 싶지 않으나 끼니를 찾아 해결하는 게 쉽지 않다. 그렇다고 건너뛸 수는 없다. 냉장고에 밑반찬이 수두룩하지만, 전자밥통의 밥을 두어 주걱 퍼서 묵은 김치 하나로 때우고 만다.

아내가 없는 남자 노인의 사망률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4.2배나 높다는 통계가 발표되었다. 이미 짐작하고 있으니까 새로울 것은 없다.

아내는 평균적으로 볼 때 나보다 7년 정도 오래 살아야 할 테지만, 노인의 일을 누가 알 수 있을까?

병석에 누워있을 날이 얼마나 길지, 또 몇 번을 병원에 입원할 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이에 대비한 홀로서기는 마지막 발달과업이리라.

홀로서기는 자식들로부터도 독립하는 것이다. 자식에게 의무적인 효도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

나는 자유로운 영혼이기를 바란다. 이 세상을 떠날 때에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 한다. 죽는다는 것은 모든 인연을 끊는 것이다.

그런 뒤 저승을 떠돌더라도 홀로 설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려 한다. 죄가 많아 지옥 불에 떨어진다 해도 홀로 견디리라 다짐한다. 홀로서기는 무한한 생존의 능력이다.

아내는 가끔 시시한 일들을 내게 주문한다. 요리를 하다가도 무슨 양념을 먼저 넣고 무엇을 나중에 넣어야 한다고 알려준다.

나는 알았다고 대답을 하지만, 금세 잊고 만다. 마음속으로 ‘글쎄, 닥치면 다 하게 돼있어.’라고 대답한다.

아내를 따라 마트에 다니면서 장보는 요령이나 물건 고르기, 물가 등을 아는 데 도움을 받는다. 그러나 나는 아내에게 가르쳐줄 게 없다는 게 안타깝다.

청소할 때 진공소제기만 돌리고 걸레질을 하지 않는다고 아내는 내게 불평한다. 그 일은 아내의 홀로서기를 위한 나의 배려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모든 것을 내가 한다는 것은 나에겐 좋을 런지 몰라도, 남정네가 먼저 떠날 경우 아내의 적응에 장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딸네 집에서 고양이 두 마리를 기른다. 아메리카 쇼트헤어 종인 암컷 말순이는 중성화 수술을 했고, 북구의 털북숭이 방울이는 수술을 하지 않은 1년생 암컷이다.

성격 좋은 희귀종이라 새끼를 한 배쯤 받을까 고민 중이다. 혼자 살려면 애완동물을 기르는 게 정서안정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홀로서기를 준비하는 동안 점차 자신감이 생겼다. 홀로 된 남자 노인을 이해하게 되었고, 안됐다 생각했던 예전의 마음이 사라졌다.

노년의 삶이란 주어진 여건 속에서 성실하게 사는 것이며, 힘들고 고통스럽다 해도 그런대로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김현준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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