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4-04-19 17:35 (금)
[온고지신]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안다
상태바
[온고지신]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안다
  • 전민일보
  • 승인 2016.04.04 10: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歲寒然後知松栢之後彫也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든다는 것을 안다”

1840년(헌종 6년) 9월, 55세인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는 왕의 명령에 따라 제주도 대정현(大靜縣)에 위리안치(圍離安置)됩니다. 대정현은 오늘날 남제주군 대정읍 안성리를 가리키고, 위리안치는 집 둘레에 가시나무 울타리를 쳐 달아나지 못하도록 한 혹독한 유배형입니다.

위리안치라는 말이 상징하듯이, 추사는 제주도에 유배된 뒤에도 반대파들의 박해를 받아야만 했습니다. 반대파들은 추사의 친구들을 괴롭혔고, 박해를 견디지 못한 친구들은 추사 곁을 떠났습니다. 참으로 힘든 날들의 연속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 역관인 이상적(李尙適)만은 꿋꿋하게 그의 곁을 지켰습니다. 추사가 가장 어려운 처지에 놓였을 때도 목숨걸고 도와주었습니다.

1884년 추사는 그런 이상적을 위해 세한도(歲寒圖)를 그리고, 자신이 세한도를 그리게 됐는지를 정갈한 글씨로 밝힙니다. 대한민국 국보 제180호가 탄생하는 순간입니다. 추사는 왜 이상적에게 세한도를 선물했을까? 틀림없이 「논어」자한(子罕) 27장에 나오는 다음 구절을 생각했을 겁니다.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든다는 것을 안다.(歲寒然後知松栢之後彫也)

평소에는 사람의 마음을 잘 알 수가 없습니다. 나무도 여름에는 늘 푸른 나무와 갈잎나무를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가을이 되고 겨울이 되면 늘 푸른나무와 갈잎나무를 분명하게 가려낼 수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도 평소에는 알 수 없지만, 큰일과 이해관계를 만나면 제대로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공자는 그런 사람의 마음이 언제 드러나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푸른 소나무와 잣나무가 뒤에 시든다고 말했던 것인데,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선비가 사랑한 나무」를 쓴 강판권에 따르면, 한국의 「논어」번역본은 물론 세한도(歲寒圖)를 연구한 글이나 책들에서도 공자가 말한 송백(松柏)을 소나무(松)와 잣나무(柏)로 번역하고 있는데, 이것은 잘못됐다는 것입니다.

송백(松柏)에서 송(松)은 소나무가 맞지만 백(柏)은 소나뭇과의 잣나무가 아니라 측백나뭇과의 측백나무로 번역해야 된다는 겁니다. 공자의 활동무대가 된 산동성은 물론 중국 문화의 발상지인 황하(黃河)나 앙자강(揚子江) 유역을 비롯한 중국 본토에는 잣나무가 자라지 않는데, 어떻게 잣나무가 더디게 시든다는 것을 알았겠느냐는 말입니다.

어쨌든 추사의 작품을 받은 이상적은 감동한 나머지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그동안 온갖 고통을 참으면서 추사를 위해 바친 정성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상적은 세한도를 베이징까지 가져가서 청나라 지식인들에게 자랑했다고 합니다.

심우석 관광학 박사, 전주대 겸임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신천지예수교 전주교회-전북혈액원, 생명나눔업무 협약식
  • '2024 WYTF 전국유소년태권왕대회'서 실버태권도팀 활약
  • 남경호 목사, 개신교 청년 위한 신앙 어록집 ‘영감톡’ 출간
  • 이수민, 군산새만금국제마라톤 여자부 풀코스 3연패 도전
  • ㈜제이케이코스메틱, 글로벌 B2B 플랫폼 알리바바닷컴과 글로벌 진출 협력계약 체결
  • 맥주집창업 프랜차이즈 '치마이생', 체인점 창업비용 지원 프로모션 진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