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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고지신] 불교가 추구하는 궁극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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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고지신] 불교가 추구하는 궁극목적
  • 전민일보
  • 승인 2016.04.01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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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界火宅四生苦行

“삼계가 불타는 집이고 사생이 고해이다”

법정 스님이 묻고 성철스님이 대답하는 형식으로 꾸며진 「설전(雪戰)」을 보면, 법정이 “불교가 추구하는 궁극목적이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성철이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모든 종교가 가진 궁극목적은 모두 같습니다. 상대유한의 세계에서 질대무한의 세계로 들어가 영원한 행복을 얻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상대유한의 세계는 생겼다가 없어져야 하는 생멸(生滅)의 세계이고, 절대무한의 세계는 모든 고통을 벗어던지는 해탈(解脫)의 세계이니, 차안(此岸)에서 피안(彼岸)으로 건너가 영원한 행복을 누리자는 것입니다. 영원한 행복은 상대유한의 세계에서는 실현될 수 없으니, 절대무한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 모든 종교의 근본 목표입니다.

동서고금을 통해 철학자나 과학자나 종교가나 누구든지 “살아가는 목표가 무엇인가?”라고 물으면 “행복에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사람이란 살아있는 동안에 고생을 하게 되는 많은 조건이 있어서 사람이란 고(苦), 고생하는 존재이지 낙(樂), 즐거움은 극히 일부분뿐입니다. 그것을 불교에서는 다음과 같이 표현합니다.

삼계가 불타는 집이고 사생이 고해이다.(三界火宅四生苦行)

삼계(三界)는 중생들이 생사 윤회하는 미망의 세계인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 세 가지를 가리키고, 사생(四生)은 생물이 태어나는 네 가지 형태인 태생(胎生) 난생(卵生) 습생(濕生) 화생(化生)을 가리키니, 삼계가 불타는 집이라는 것은 중생이 사는 우주 전체가 불타는 집과 같고, 사생이 고해라는 것은 생명으로 태어나는 모든 것이 고통의 바다에서 허덕인다는 겁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불타는 집에서 고생만 하고 사는 게 인생이니, 좀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자는 겁니다.

행복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잠깐 동안 얻는 행복과 영원한 행복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을 보면 상대유한으로 되어 있어서 모순과 모순이 대립하는 투쟁의 세계입니다. 투쟁의 세계에서는 행복을 잠깐 동안 얻었다 해도 곧바로 끝나버리게 됩니다. 잠깐 동안 얻는 행복에만 만족할 수 없으니 영원한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사람의 본능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영원한 행복은 현실 세계에서 잠깐 동안 누리는 행복을 완전히 포기하고 절대무한의 세계에서 절대무한한 행복을 누리는 겁니다. 그런 절대무한의 세계는 내 마음속에 모두 갖추어져 있는 것이지. 내 마음과 이 세상밖에 따로 있지 않다는 겁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 자기가 절대 존재이며 무한한 능력을 갖고 있으니, 그것을 개발하고 깨쳐 완전한 인격을 완성해서 자기도 이롭고 남도 이롭게 만드는 것(自利利他)이 불교가 말하는 영원한 행복입니다.

황미옥 조각가, 군산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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