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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 폐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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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 폐쇄
  • 전민일보
  • 승인 2016.03.16 10: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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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놀이기구가 별로 없어 땅바닥에 오징어 모양을 그린 뒤, 편을 나눠 상대 방어망을 뚫고 오징어 꼬리를 발로 찍는 놀이를 주로 했다.

이 놀이를 하고 나면 온몸에 흙이 범벅이 되고 코끝에 먼지가 묻어 굴뚝처럼 새까맣게 되었다.

그리고 여학생은 고무줄놀이를 많이 했고 남학생은 노트로 접은 딱지놀이를 주로 했다. 물렁물렁한 정구공을 가져 온 친구가 있는 날은 방향이 일정하지 않은 작은 공을 쫓아 산 그림자가 운동장을 삼킬 때까지 왁자지껄하게 축구를 했다. 비록 정구공으로 한 축구였지만 당시엔 고급 스포츠를 즐긴 축에 속했다.

그런데 정구공으로 축구를 한 것보다 더 고급스러운 것이 있었다. 운동장 한 쪽에 푸른 잔디밭이 자리 잡고 있었다. 잔디밭에 들어가지 말라는 경고 문구가 도끼눈을 뜨고 있었지만 우리는 그 눈을 피해 잔디밭에서 씨름을 하거나 질펀하게 누워 하늘을 올려다보기도 했다. 그곳에서 아무리 굴러도 흙이 묻지 않았고 푸른색감이 주는 편안함이 마음을 보드랍게 해주었다.

그런데 어느 날 학교에서 잔디밭 둘레를 이중삼중으로 밧줄로 치고 잔디밭에 들어가는 것을 막아버렸다. 잔디밭에 들어갈 수 없었던 우리는 잔디밭에 누워 푸른 하늘을 더 이상 올려다 볼 수 없었다.

얼마 전 정부가 개성공단을 폐쇄했다. 개성공단은 경제논리와 평화논리가 상호 작동하는 공간이다.

남북이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개성공단은 남북이 평화를 유지하는 완충지대 역할을 해왔다. 개성공단에서 일하는 북한 근로자는 5만 4,000여명에 이른다.

북한은 끊임없이 핵무기개발에 매진하여 남북평화 뿐만 아니라 세계평화까지 위협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그동안 한 일이 대북방송을 다시 시작하고 횟수를 늘리는 정도였다. 그래서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식으로 대응하자는 의미에서 NPT를 탈퇴하고 핵무기를 보유해야한다고 주장한 사람도 있다. 잘 든 칼자루만 쥐고 있다하여 상대를 제압하거나 서로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일이든 나갈 구멍인 출구를 마련해 놔야 서로 숨통이 트이고 실마리를 풀 수 있다.

출구를 아예 없애면 문제가 꼬여 절망적인 상황에 이르기 쉽다. 초등학교 때 건강하게 뛰어놀고 하늘을 쳐다보면서 비상하는 꿈을 꾸었던 잔디밭을 폐쇄하는 날, 우리는 싱싱하고 발랄한 언어를 쓰기보다 시들고 거친 언어로 구시렁거리는 법을 먼저 익혔다.

정부가 개성공단을 폐쇄한 것은 남북 사이에 존재하는 숨통을 끊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북한이 개성공단에서 얻은 수익금으로 핵무기를 개발하는 데 썼다고 문제를 제기하는 축이 있다.

북풍논쟁을 떠나 국가안보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나온 충정이라고 이해한다. “쥐도 막다른 골목길에 몰리면 고양이에게 덤벼들기 마련이다.”

남북관계의 완충지대이자 숨통과 같은 개성공단을 폐쇄하는 것보다 먼저 지지부진한 경제를 활성화하고 국가의 근력을 키워 국제사회에서 외교적 역량을 주도하는 게 급선무이다.

최재선 한일장신대 인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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