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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김점쇠' 1세기만에 애국지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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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김점쇠' 1세기만에 애국지사로
  • 최홍욱 기자
  • 승인 2016.03.02 09: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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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만세운동 주도한 신흥학교생 가운데 1인 공로 인정

1919년 3월 13일 오전 전주에 있는 신흥학교와 기전학교 학생들은 그 동안 비밀리 준비했던 거사를 일으켰다. 이날 학생들은 미리 준비한 독립선언문과 태극기를 가슴에 품고 학교를 빠져 나왔다. 그러나 이미 왜경들이 다가교를 지키고 서 있었다. 학생들도 이미 ‘남문가에 아스마고(남문 밖에서 만나자)’라고 일본말을 한국말로 써 서로 목적지를 공유하고 있었다. 다가교에서 뿔뿔이 흩어진 학생들은 남문시장에 하나 둘 모여 들었다. 이날은 장날로 남문시작은 김제와 남원, 고산에서 몰려든 사람들로 가득했다. 학생들은 누구랄 것도 없이 숨겨둔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쳤고, 독립선언문을 사람들에게 나눠주기 시작했다. 이렇게 시작된 전주의 만세운동은 이후에도 3개월 넘게 도내 곳곳에서 산발적으로 계속됐다. 당시 전주 삼일운동의 주축은 천도교와 기독교 지도자들, 그리고 신흥학교와 기전학교 학생들로 알려져 있다. 고형진, 남궁현, 김병학, 김점쇠, 이기곤, 김경신 등 신흥학교 학생들이 왜경에 체포돼 고문을 당하는 등 고초를 겪었다.

이 가운데 김점쇠(당시 18세) 학생은 14일 완산교 부근에서 또 다시 만세운동을 벌이다 왜경에 체포됐다. 이후 징역 1년을 선고 받아 이듬해 출소했으나 투옥 기간에 받은 고문으로 바로 숨을 거두고 말았다.

김점쇠 독립유공자는 법정에서 자신의 독립운동 정당성을 논리적으로 진술하기도 했다.

그는 항소심에서 “세계 평화의 호기(好機)를 이용해 조선의 독립을 바래서 만세를 부른 것은 일본이 조선인에게는 일본 정치를 베풀지 않고 조선인의 정치를 베푼 데 그 원인이 있다”며 “탈취하고도 이를 반환하지 않는 자를 불가하다 할 것인가. 환수를 요구하는 자를 불가하다 할 것인가. 생각해 보기 바란다”고 질문을 던졌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1일 김점쇠 독립유공자는 ‘2016년 전라북도 3.1운동 기념식’에서 건국훈장 애족장에 전수됐다. 아쉽게도 후손이 없어 조카인 김남규(79)씨가 대신 받았다.

김남규씨는 “할머니로부터 큰아버지(김점쇠)의 독립운동 이야기를 듣고 자랐지만 관련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이번에야 전수를 받게 됐다”며 “너무 늦게 받게 해드려 큰아버지께 죄송할 따름이다”고 밝혔다./최홍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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