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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 불량노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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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 불량노년
  • 전민일보
  • 승인 2016.02.04 10: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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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A복지관에서 단양 8경을 보러 나들이를 떠났다. 관광버스 안에서 노래와 춤판이 벌어졌다.

사회를 맡은 권 총무의 구수한 입담에 회원들은 점잔만 빼고 앉아있을 수 없었다. 디스코 메들리 가락에 맞춰 엉덩이를 흔들며 땀을 흠뻑 흘렸다. 요즘 한창 뜨고 있는 불량노년들의 모습이었다.

일본의 불교 미술가인 세키 간테이는 2001년 《불량노인이 되자》는 책을 펴내 주목을 받았다. ‘불량노인구락부’가 결성되었고 대표를 맡은 사람은 “간테이 선생은 나의 살아있는 하느님이다. 그는 현존하는 기적적인 불량노인으로, 걸어 다니는 초 엔돌핀이다.”고 극찬했다.

간테이 씨는 괴짜 노인이다. 부인이 엄연히 있는데도 술집에 가서 여자들과 사귄다. 수백 년된 고목이나 몇 해 안 된 나무나 봄이 되면 잎이 나오는데, 새싹으로 나오는 잎 자체는 수령과 관계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는 스스로 볼품없는 노인으로 재력가가 아니라고 했다.

자신의 매력은 자유로운 영혼, 즉 예술가로서의 감성이라고 하였다. 매일 늦게 일어나 먹고 싶은 것을 골라 먹고 술과 담배를 즐기며, 시간과 돈을 자기 마음대로 쓰면서 몸이 이끄는 대로, 다른 사람 눈치를 안 보며 산다고 하였다. 그는 늙어서도 그림을 그리거나 조각을 하면서 늘 성장 중이라고 했다.

86세 된 일본의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자인 오자와 쇼이치는 전형적인 불량노인이다. 방송에서도 ‘몸이 이끄는 대로 살아야 행복하다. 모범생처럼 살지 말고 세상을 삐딱하게 대하자.’고 주장한다.

생활의 때를 벗겨내고 번득이는 생명력을 찾는 것이야말로 노인이 가져야 할 태도라고 하였다. 세상은 아름다운 곳이니 늙더라도 타성에 젖지 말고 죽을 때까지 아마추어 정신으로 살라고 권한다.

2006년 일본에서 첫 모임을 가진 불량노인구락부에서는 ‘뻔뻔한 할머니들에게 대항해서 세상을 바로 잡자.’는 구호를 내걸었다.

어찌 보면 아내인 할머니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한 것 같다. 연 1회 정기총회를 여는데, 서로의 불량스러움을 자랑한다. 권장하는 활동을 점수화하여 누계 1천점이 되면 대형(大兄) 칭호를 받는다. 혼자 여행 가기는 10점이나 아내와 동행하는 여행은 -30점이다. 술에 취하기는 1점이지만, 젊은 애인을 만들면 100점을 준다.

일본 어느 의과대학 교수는 ‘불량노인이 장수하며, 원하는 행동을 하고 속 편하게 하루를 보내는 것이 건강에 유익하다.’고 말했다.

나는 불량노인 운동을 지지하지 않는다. 그런 움직임이 일어난 사회적 배경에 주목한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남의 눈총을 받지 않는 범위 내에서 최소한의 재량을 부리며 꼼지락거릴 것이다.

그렇다고 불량이 무조건 아름다운 것으로 둔갑하여 불량할머니 운동이니, 불량운전자 구락부 등이 독버섯처럼 번진다면 우리 사회는 걷잡을 수 없이 혼란에 빠질 수도 있다. 불량노인 운동은 너무 점잔을 빼며 기죽은 채 여생을 보내는 노인들에게 작은 위안이 되지 않을까 싶다.

김현준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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