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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 대신 ‘행복한 학교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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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 대신 ‘행복한 학교 만들기’
  • 전민일보
  • 승인 2016.02.02 13: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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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지 ‘학교폭력’이란 말이 우리에게 익숙해졌다.

정부는 출범초기 “국민을 불안하게 하는 4대 사회악을 뿌리 뽑겠다“ 고 약속했다. 필요한 일이다. 4대악(惡)은 성폭력, 학교폭력, 가정폭력, 불량식품이다.

그래서인지 청소년과 ‘4대악’하면 ‘학교폭력’이 먼저 떠오른다. 또 ‘학교폭력’하면 <학교+폭력 = 학교폭력>이, 그리고 ‘중2’가 생각난다. 아마 이렇게 연상(聯想)되는 것은 매스컴에서 쏟아놓은 정보들을 우리가 별 여과없이 담아두었던 ‘기억’때문 일거다.

반대로 뒤집어보면 ‘중2’는 ‘학교폭력’이고, 학교는 폭력과 합성어가 된다. 얼마나 위험천만한 연결인가? 이것이야말로 무심코 ‘일반화의 오류’를 범할 수 있다. ‘학교폭력’을 근절하자고 내세운 표현이 상당수의 청소년에게 의도와는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이것은 폭력을 행사한 당사자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이므로 선량한 학생에게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반론이 가능하다. 그러나 일부 청소년들은 그런 것을 구분해서 받아들이기 보다는 오히려 “그래? 나도 중 2가 되었는데, 좀 놀아볼까?”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 대열에 ‘자동합류’하는 셈이다. 학교에서 행세 못하면 집에서라도 행세를 한다. 오죽하면 “‘중2’때문에 북한이 못 쳐들어온다.”고 했을까? 웃자는 이야기겠지만 매우 씁쓸하다.

그러므로 ‘학교폭력’이란 단어는 4대악에 넣기보다는 ‘행복한 학교 만들기’등으로 순화해서 별도의 관리체계를 만들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학교폭력의 예방효과 여부와 상관없이 학교라는 신성한 공간이 폭력과 연결되는 현실이 안타깝기 때문이다. 정부가 뒤늦게나마 ‘학교 밖 청소년지원대책’등을 마련한 것은 그런 보완작업의 일환으로 보여 다행이다.

요즘 학교의 기능이 자주 도마위에 오른다. 여기저기서 학교교육의 정상화를 외치지만 이미 ‘교권’이 무너져 있다. 또 ‘학생인권’이 강조되다 보니 ‘판’을 깨는 학생을 마땅히 제재할 수단이 없다. 그냥 바라보는 수밖에... 그러다가 사안이 발생하면 냉정하게 처리하게 된다. 소위 ‘시범케이스’인데 당사자는 “내가 재수 없게 걸렸다”는 생각이다. 인성교육이 필요한 대목이다. 예전 같으면 종아리를 때려서라도 바로잡았다. 물론 그것이 옳았다는 게 아니다.

교권이 추락한 상황에서 교사들의 사명감은 예전 같지 않다. 요즘 교사는 ‘교권’과 ‘인권’사이에서 적당한 줄타기를 해야한다. 그러다보니 ‘안전지대’에서 학생들과 적당히 관계형성을 해나가는 선생님이 유능한 사람이 되었다. 여학교 재직 남자선생님은 천장만 쳐다보면서 수업한다는 이야기가 이상할 것도 없다. 소위 ‘딜레마 존’에서 살아가는 셈이다. 참으로 자존감이 떨어지고 직업 만족도가 낮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과연 존경받는 선생님은 없을까? 그렇지 않다. 내가 아는 전주꿈누리교실(동화중학교부설 대안학교) 박병훈 팀장님은 동화중학교 교장을 마치고 다시 팀장으로 봉직한다. 여기 학생들은 주로 학교 적응이 어렵거나 학교폭력 등에 연루되어 해당처분을 받고 위탁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박 팀장님은이 아이들을 일일이 거두며 함께 생활하고 있다. 예를 들면 아이들이 새벽까지 먹고 놀다가 돈 떨어지고 잘데 없으면 팀장님께 전화를 한다. 그러면 팀장님은 기꺼이 나가서 밥값내고 찜질방 잡아서 같이 날 새고 들어간다. 반론이 있을 거다. “굳이 선생님이 그럴 필요까지 있느냐?”하고, 그러나 가족도, 친구도, 학교도 외면했던 아이를, 그것도 전직 교장선생님이 자신의 요청을 거절하지 않고 새벽에 달려 나와서 챙겨주었다는 사실자체만으로도 그 아이는 자존감이 높아진다.

개중에는 이런 팀장님을 적당히 이용하는 친구도 있다. 그것은 그것대로 팀장님이 감수를 한다. 왜? 어느 때일지 모르지만 그 아이는 팀장님을 떠올리며 “그땐 내가 정말 잘 못했어”라며 자신을 반성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때까지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게 깨닫게 되면 대부분의 친구들은 본래자리로 돌아온다. ‘기다림의 미학’이랄까? 이런 사실을 믿기에 오늘도 팀장님은 아이들의‘부도수표’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받아주고 있다. 아이들은 이렇게 믿음의 ‘신약’을 먹게 되면 급속히 변화한다. 이런 시도를 법무부 소년원학교 선생님들과 보호관찰관들은 끊임없이 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학교폭력’이라는 틀 안에 아이들을 무조건 몰아넣고 뚜껑을 덮으려하지는 않았는지? 다시 한 번 돌아보자. 우선 내 자녀, 혹은 청소년을 진심으로 믿어는 보았는지? 나부터 점검해보았으면 한다. ‘학교폭력’대신 마음을 헤아리는‘행복한 학교 만들기’로 바뀌는 그날을 기대해본다.

이혜성 전북청소년자립생활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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