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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사람 천당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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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사람 천당사람
  • 전민일보
  • 승인 2015.12.17 11: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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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이상한 일이다. 똑같은 환경에 음식을 차려 주었는데 지옥사람들은 모두 마르고 허기져 있고, 천당사람들은 포동포동 살이 찌고 안색이 좋다. 자세히 살펴보니 원인은 숟가락의 길이 때문이었다. 숟가락이 팔의 길이보다 길면 자기 입에 음식을 떠 넣으려 해도 입에 닿지 않는다.

오래 전에 교회 부흥회에서 목사에게 들은 이야기다. 천당과 지옥의 차이를 비교했는데 깨달은 점이 있어서 지금도 잊지 않고 있다. 지옥사람들은 욕심이 많고 나밖에 모르므로 자기가 먼저 먹으려고 다투고 서둘지만 숟가락이 길어 자기 입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다투다가 음식은 모두 바닥에 떨어뜨려 버리고 조금도 먹지 못했다. 천당사람들이 먹는 것을 살펴보니 그들은 음식을 긴 숟가락으로 떠서 앞 사람의 입에 넣어 주었다. 또 앞 사람은 반대로 이쪽 사람에게 넣어주었다. 그래서 서로 배도 부르고 즐거운 식사가 되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어디서나 통할 수 있는 가르침이었다. 오늘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면 어떤가. 서양의 개인주의와 합리주의사상의 영향으로 이기심이 많아졌다. 우리의 전통사상인 공동체의식과 인문주의 사상이 쇠퇴하여 정으로 맺어진 두레의식이 희박해졌다.

전통마을에는 공동우물이 있었다. 마을사람들은 한 우물물을 나누어 먹고 살았다. 고향마을도 마찬가지였다. 마을 가운데에 우물이 있었고 어머니들이 물동이를 이고 와서 두레박으로 길어 올려 집으로 가져갔다. 커다란 항아리에 가득 채워놓고 밥 짓고 설거지를 하며 세수하는데 썼다. 그 때는 마을에 다툼이라는 게 없었다. 조금만 색다른 음식을 만들면 이웃끼리 나누어 먹고 살았다.

또 품앗이라는 게 있었다. 이웃 사람들이 모여 오늘은 우리 일을 하고 내일은 옆집 일을 했다. 서로 협동하여 일을 하니 즐겁고 능률도 올랐다. 마을에 큰 일이 생기면 서로 도와 어려움을 이겨냈다. 상을 당하거나 혼인을 할 경우 내 일처럼 생각하고 도왔다. 이런 일이 전통적으로 내려와 수 백 년을 이어왔다.

요즘은 어떤가. 어디서나 수돗물을 먹는다. 위생적이고 건강에 좋기는 하지만 우물물을 먹을 때보다 인정이 메말랐다. 이웃에도 누가 사는지 모르고 지낸다. 나는 지금 우리 아파트에서 지을 때부터 20여 년이나 살았다. 그런데 이사를 오고가서 몇 층에 누가 사는지 모르는 집이 더 많다. 서로 알려고도 하지 않고 알리려고도 하지 않는다. 식구는 몇이고 하는 일이 무엇인지는 물론이고 얼굴도 잘 모른다. 이런 실정이니 음식을 남의 입에 넣어주고 싶은 마음이 날까.

농촌에 가도 품앗이는 없어졌다. 모내기, 약주기, 벼 베기, 밭갈이, 고구마 캐기도 기계로 하고 뒤처리만 사람이 하니 품앗이가 필요 없게 되었다. 일을 해도 날품팔이로 하고 품삯만 받으면 끝이다. 네일 내일을 오가며 하지 않는다. 편리해서 좋 지만 인정이 오가지 않으니 아쉽다.

흔히 생활이 간단하고 편리하고 빠르면 좋은 것으로 안다. 사실 그렇기도 하다. 서울에 두시간도 못 되어 가는 게 좋지 8시간을 가는 게 좋지는 않다. 만원이 되어 앉지도 못하고 서서 가는 것보다는 편안한 의자에 앉아 바깥 구경을 하며 쏜살 같이 달리는 기차가 얼마나 좋은가.

발전이 좋기는 하나 인정이 메말라 가는 게 아쉽다. 온통 나만을 위한 일들로 살벌하니 이웃 사이에 정이 없다. 나보다 남을 먼저 배려하고 사랑하고 측은히 여기는 마음이 부족하다. 내 뜻과 조금만 다르면 다투고 따지는 경우가 많다. 서로 입장을 바꾸어 생각하면 좋으련만 나밖에 모르니 문제다. 서로 자기주장만 하다 소송하는 사람도 많다. 이 사회가 이래서야 살맛이 나겠는가.

우물물이 수돗물로 바뀌면서 점점 지옥사람들처럼 되어가니 이래서야 되겠는가. 천당사람들처럼 서로 남을 배려하는 사회로 바뀌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포동포동 살이 찌고 화기애애한 천당사람들이 그립다.

김길남 전 전주화산초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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