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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름꾼의 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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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름꾼의 재기
  • 전민일보
  • 승인 2015.12.09 10: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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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름꾼은 대부분 뒤끝이 좋지 못하다. 선량한 사람도 도박에 빠져들면 패가망신하기 마련이다. 도박은 사행성을 갖춘 중독행위이기 때문이다.

미국 라스베가스 지하 배수구에 노숙자 4백여 명이 살고 있다. 그들은 대박이 터질 날을 기다리며 10여 년을 버티고 있는데, 봉사재단의 도움으로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이 처음 라스베가스에 가던 날로 되돌아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아할까?

재기에 성공한 두 사람의 예외가 있다. 김 씨는 익산시 산골마을에 살던 순박한 농부였는데, 어느 해 겨울 동네 사랑방에서 도박에 휩쓸렸다. 처음엔 추렴내기로 시작하여 판이 차츰 커졌다. 운이 있었던지, 꾼들의 유혹이었는지 조금 재미를 보았고, 점차 수렁에 깊이 빠져들고 말았다.

세밑 마지막 날 전답까지 날리고 말았다. 새벽에 문을 열고 보니 밤새 하얀 눈이 마당에 수북이 쌓여있었다. 지난 밤 일만 없었으면 얼마나 행복한 새해 첫날의 서설(瑞雪)이었을까.

순한 아내와 개구쟁이 삼남매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내가 미쳤지. 아니 바보 등신이야.’고개를 옆으로 몇 차례나 흔들었다. 허청 앞에 덩그렇게 놓여있는 지게를 어깨에 메고 작대기를 찾았다. 김 씨는 도깨비에 홀린 듯이 산으로 깊숙이 올라가며 하얀 눈 위에 발자국을 남겼다.

이제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날 종일 썩어 자빠진 나무 등걸을 모았다. 다리가 휘청거릴 정도로 땔나무를 한 짐지고 집에 돌아왔다.

김 씨는 예전의 그가 아니었다. 노름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잡기에서 멀어졌다. 한 푼의 돈도 아끼며 자린고비가 되었다. 먹고 입는 것을 줄여 돈을 모았다. 그는 5년 만에 재기에 성공했다. 시장 통 사거리에 번듯한 집을 짓고 만물상 가게를 열어 이웃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이 씨는 재래시장 근처에서 시멘트 블록 공장을 운영하였다. 한때 일꾼들이 이십여 명이나 될 정도로 번창했다. 한참 바람을 탄 마을 가꾸기 사업으로 시멘블록이 불티나게 팔렸다. 노름꾼들이 이를 놓칠 리 없었고 온갖 유혹에 끌려 그는 늪에 빠져들었다. 한동안 노름 실적이 좋아 이씨는 기고만장했다.

그러나 전성기는 쉽게 사라지고 마는 법, 꾼들의 각본에 의하여 이 씨는 있는 재산 다 털리고 겨우 시멘트 블록공장 하나만 달랑 남았다.

새벽부터 비는 부슬부슬 내리고 옷깃을 파고드는 한기에 몸서리쳤다.

‘내가 미쳐도 한참 미친 게지, 어디 양잿물이라도 한 바가지 둘러 마시고 이놈의 세상 콱 죽어버리고 말까?’

그러나 모진 게 목숨이라 그러지도 못 하고 벽돌을 찍기 시작하였다. 한 장 찍어 돈 몇 십 원 남는다고 했던가.

이 씨는 주위의 온갖 수모를 못들은 척, 못 본 척하며 말없이 벽돌 찍는 일에만 매달렸다. 몇년 뒤 그는 새로운 자동식 블록기계를 사들이고 새 공장을 신축하여 번듯한 사장이 되었다.

노름으로, 도박으로 성공하기는 불가능하며, 더구나 노름꾼의 재기는 더욱 어렵다는 사람들이 알았으면 한다.

김현준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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