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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위기 청소년들이 힘 내도록 열심히 살겠다”‘전북경찰청 청소년 CEO카페’ 이민우 군
최홍욱 기자  |  ico@chonb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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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1.30  15:3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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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오전 8시 30분 전북지방경찰청 1층 두드림 카페에 커피콩을 부수는 소리가 울린다. 이미 출근을 마친 경찰과 이른 시간 방문한 민원인, 그리고 의무경찰 시험을 앞둔 응시생 등 각기 다른 이야기를 가진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이들 모두 한 청년이 만든 따뜻한 커피로 잠시 여유를 즐긴다. 그리고 맑고 순수해 보이는 청년의 미소도 함께 담아 자리에 앉는다.

한 없이 밝아 보이는 청년, 이민우(20)군은 ‘비행 청소년’이었다.

12살의 어린 나이에 저지른 비행으로 민우군은 소년원을 가게 됐다. 소년원에 있던 시절 세상에서 유일하게 의지하던 혈육 어머니를 잃었다. 2010년 11월 18일 오후 9시30분께 이미 잠에 들었던 민우군은 지병으로 오랫동안 투병생활을 하던 어머니였기에 외삼촌이 면회 왔다는 말을 듣고 이미 짐작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막상 어머니가 입원했던 병원 이름이 적힌 봉투를 들고 있는 외삼촌을 보니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이민우 군은 “외삼촌이 든 봉투를 보니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충격을 많이 받았다”고 말하며 잠시 침묵했다.

   
 
같은 해 12월 13일 소년원을 나온 민우군은 갈 곳이 없어 전북청소년자립생활관에 오게 됐다. 그러나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이 자신 때문이란 생각에 수차례 가출을 하고 자해까지 시도했다.

민우군은 “어머니가 돌아가신지 얼마 되지 않아 생활관에 오게 됐지만 쉽게 적응하지 못하고 계속 문제를 일으켰다”며 “이때 현 이혜성 전북청소년자립생활관장님을 만난 것이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고 밝혔다.

이혜성 생활관장님은 마음을 잡지 못하는 민우군을 달래기 위해 외삼촌과 연락을 시도했다. 그리고 다음해 5월 계속 문제를 일으키는 민우군을 데리고 충남 예산군의 한 추모관을 찾았다. 민우군의 어머니가 모셔진 곳이었다.

이 군은 “어머니가 좋은 곳에 모셔져 있는 것을 보니 안심되기도 했지만 모두가 나 때문인 것 같아 한 없이 죄송스러웠다”며 “어머니 앞에서 두손을 모으고 약속했다. ‘착하고 당당하게 그리고 자신감 넘치는 아들로 살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민우군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위기청소년 멘토-멘티 결연 맺기’에서 외면 받았다. 12살의 나이로 소년원에 들어가 오랫동안 지낸 것과 화려한 비행 이력을 본 사람들이 선뜻 민우군의 멘토로 나서지 못했다. 이때 주식회사 지오엠씨 임영현 대표가 손을 내밀었다. 임 대표는 선뜻 민우군이 대학에 입학해 졸업할 때까지 학비와 생활비를 돕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이혜성 관장은 이를 반대했다. 민우군이 스스로 자립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해서다. 임 대표와 민우군은 멘토로서 자주 연락하고 세상에 기댈 곳이 있다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데 동의했다.

민우군은 기대보다 더 빨리 사회에 적응해갔다. 검정고시를 시작한지 1년 5개월 만에 중·고등학교 검정고시를 모두 합격했다. 그리고 경제적으로 자립하기 위한 노력도 함께 했다. 이 관관이 ‘청소년CEO 두드림 카페’를 소개해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하고 대학가 주변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서빙과 접시를 닦으며 생활비와 학비를 마련했다. 그리고 2013년 원광디지털대학 언어치료학과에 입학했다. 한 걸음씩 사회에 나올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민우군은 “임영현 대표님의 지오엠씨라는 회사에서 학습보조기구를 만들어 판다는 이야기를 듣고 관련 학과에 지원하게 됐다”고 밝혔다.

대학에 들어간 뒤 전북지방경찰청의 청소년 CEO카페에서 바리스타로 일을 하고 있다. 이른 아침부터 늦은 오후까지 매일 일하고 있지만 꿈에 조금 더 가까이 갈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하다. 그리고 이제 대한민국 남자로서 병역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이 군은 “경찰청에서 일을 하면서 의무경찰을 동경하게 됐다. 병역의무를 의경으로 하고 싶어 4차례 도전했지만 고배를 마셨다”며 “육군 운전병에 지원했는데 지난 19일 1차 합격을 했다. 2차까지 합격하면 내년 1월 정도에 입대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민우군이 운전병에 지원한 이유는 자신의 ‘꿈’이기 때문이다. 어머니와 행복한 시절을 보내던 10살 때, 막내 삼촌의 5톤 트럭을 타고 외갓집을 가는 길이 너무 즐거웠다. 큰 트럭 운전석에 앉아 내다보는 세상은 정말 달라보였다.

민우군은 “운전석에 앉아보니 정말 멋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관광버스나 대형트럭을 운전하는 일을 하고 싶어졌다”며 “다들 운전기사가 힘들다고 하지만 원하던 일이니 한 번 싸워보고 싶다. 해보고 힘들다고 그만 두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민우군은 이미 유명인이다. 지난해부터 전국의 청소년보호시설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위기청소년들에게 전해주고 있다. 지난 6월에는 KBS 아침마당 ‘전국 이야기 대회-내 말 좀 들어봐’에 출연해 자신의 이야기를 가감 없이 말해 출연진과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전해 우승했다. 우승상금 100만원은 법무부에 전액 기증하기도 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홀로서기를 준비하면서 병역의무를 앞두고 있는 민우군은 몇 년째 연락이 없는 아버지를 이해하는 나이가 되었다. 민우군이 어렸을 때 집을 나가 어머니와 힘들게 생활했고 지금도 가족관계부에 아버지의 이름이 남아 있지만 생사도 모른다. 이 때문에 정부의 지원도 받지 못하지만 이제 아버지의 무게를 이해할 수 있다.

민우군은 “아직 원망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연락하지 못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알 것 같다”며 “혼자인 지금도 세상에서 먹고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힘든데, 한 가정의 버팀목 자리에서 느낄 아버지의 큰 부담감을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같은 남자로서 이제 원망보다 이해가 앞선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이민우군은 “남들이 하는 것처럼 했을 뿐인데 잘했다는 언론보도가 나오면 뿌듯함을 느낀다”며 “계속 잘 하면 괜찮은데 작은 실수를 다시 하면 어찌될까 두렵기도 하지만 다른 위기 청소년들이 힘을 낼 수 있도록 열심히 살겠다”고 밝혔다./최홍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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