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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커브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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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커브 길
  • 전민일보
  • 승인 2015.11.26 10: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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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커브 길은 사람이나 동물에게 비생명적이다. 아침 출근길에 얼마 전 어린 고라니가 죽어있던 급커브길 근처에 들 고양이가 탈장된 채 쓰러져 있는 것을 보았다. 한 쪽으로 치워놓고 가고 싶어도 비생명적인 선형이 너무 위험스러워 감히 엄두를 낼 수 없었다. 연구실 책상에 앉아 책을 펼쳤지만 쓰러진 고양이 모습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아름답게 살아야 한다는 것과 아름답게 죽어야 한다는 것은 뿌리가 같다. 죽음의 때를 미리 알 수 없기 때문에 어떻게 사느냐가 곧 어떻게 죽느냐로 귀결된다.

천상병 시인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라고 노래했다. 삶을 달관하고 죽음에 대해 체관하고 있는 시인 모습을 잘 나타내고 있다. 세상을 아무리 아름다운 시선으로 아름답게 보려고 해도 시인이 고백한 것처럼 아름다울 수만은 없다. 인간세상을 살다보면 괴롭고 힘든 일이 더 많다. 괴롭고 힘든 것을 시인은 아름다웠다고 역설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심미적 가치를 표출하고 있다.

우리 삶의 여정에도 급커브길이 있기 마련이다. 앞이 훤하게 뚫린 직선로를 아무 탈 없이 평온하게 달리다가 뜻하지 않는 급커브 길을 누구든지 만난다. 자동차도로 급커브 길은 교통표지를 통해 예고하기 때문에 속력을 미리 줄여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 하지만 삶에서 만난 급커브 길은 예고 없이 갑작스럽게 나타난다. 그래서 급커브 길에서 휘청거리거나 한 쪽으로 휩쓸려 균형을 잃고 넘어질 수 있다. 우리가 인생살이를 하면서 만나는 급커브 길은 여러 유형이 있다. 가족이나 지인의 갑작스러운 죽음,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 시험 낙방, 직장에서 쫓겨나는 해고, 건강 상실, 인격적인 모멸감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작년 이맘 때 문학회 행사가 있어 고속버스를 타고 대구에 다녀왔다. 88고속도로는 ‘죽음의 도로’라는 이름을 달고 있을 정도로 도로여건이 고속도로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다. 확장공사를 한창 벌이고 있어 규정 속도마저 내지 못하고 고속버스가 터덕거렸다. 자주 나오는 급커브 길과 경사가 높은 오르막길, 어둠침침한 터널은 늘 사고가 일어날 개연성이 잠복하고 있었다. 떠오른 시상을 메모지에 정리하려고 했다. 그런데 움푹움푹 패인 곳에서 탁구공처럼 튀어 오르거나 느닷없이 급커브길이 나타나 메모하는 것을 끈질기게 방해했다.

급커브 길마다 “졸면 죽음”이란 말이 붉은 색으로 서 있었다. 그동안 달려 온 길을 뒤돌아보니 참 많은 급커브 길을 용케도 지나왔다. 그 길에서 사는게 너무 고단하고 힘이 들어 삶의 끈을 놓고 싶은 순간이 많았다. 왜 하고많은 사람 가운데 날 콕 집어 그토록 무거운 아픔을 주셨는지 모르겠다며 절대자를 원망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잘 안되는 게 있다. 불면증에 걸린 사람은 수면제를 먹지 않고는 잠을 잘 수 없다. 잊으려고 해도 잊을 수 없는 아픔이 있다. 그 아픔이 수면제를 먹고 한숨 자고 일어나면 다시는 떠오르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아픔은 과거형으로 남아 있지만 현재진행형인 아픔을 어쩌랴.

장애인 아들을 둔 애비로서 감당할 몫이고 장애인 가족이 피할 수 없이 가야 할 급커브길이라면 간당거리며 가겠다. 다만 우리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장애인에 대한 그릇된 인식이나 편견이라는 급커브 길을 직선로로 바꿔야 한다. 우리 사회 곳곳에 고속도로를 직선로로 설계하지 않고 급커브 길로 설계한 조급증과 비민주성이 잔존하고 있다. 이것 또한 하루 빨리 해체해야 할 사회악이다. 급커브 길을 불편부당하게 만들어 놓고 “졸지 말라.”고 경고하는 것은 비상식적이고 비생명적인 처사이다.

최재선 한일장신대학교 인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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