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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고지신] 장애인이면서 당당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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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고지신] 장애인이면서 당당한 사람
  • 전민일보
  • 승인 2015.10.23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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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軍可奪帥也匹夫不可奪志也

“삼군이라도 그 장수를 빼앗을 수 있지만
그 마음을 빼앗을 수 없다”

신(申) 아무개라는 벙어리 칼 대장장이가 있습니다. 그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고, 탄재(炭齋)라는 호(號)로 행세했습니다.

탄재는 칼을 잘 만들었는데, 칼이 날카롭고 가벼워서 일본의 칼을 능가했습니다. 날카로움이 머리카락을 날릴 수 있을 정도이고, 얇기가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정도였습니다. 칼 만드는 대장장이는 대개쇠를 세심하게 고르는데, 그는 쇠의 품질은 묻지 않고 다만 값만을 물었습니다. 값이 중한 것은 상품(士品)이었기 때문입니다.

탄재는 성격이 괴팍한 인물로 유명했습니다. 처음 아내를 얻었을 적에 몹시 흡족해했는데, 우연히 아내의 월경대를 보고는 몹시 더럽게 여겨, 그때부터 아낙네가 짓는 밥은 먹지 않았습니다. 그의 조카가 쌀을 씻고 밥을 지어서 그를 끝까지 봉양하였습니다.

성질도 매우 포악해서 자기에게 거스르는 사람이 있으면 부젓가락과 쇠망치를 겨누었습니다. 일찍이 도의 감사(監司)가 그에게 부당한 일을 하라고 명령하자, 그는 사자(使者) 앞에서 상투를 자르며 거절했습니다. 아마 그는 다음과 같은 공자의 말을 생각했을 겁니다.

삼군이라도 그 장수를 빼앗을 수 있지만 필부라도 그 마음을 빼앗을 수 없다.(三軍可奪帥也匹夫不可奪志也)

탄재는 물건에도 박식했습니다. 군수가 구슬갓끈을 살펴보게 하였는데, 그는 침으로 긋고 지푸라기를 꽂아 섬나라의 채색 호박(琥珀) 모양을 만들어, 연경(燕京)에서 사온 것이라고 알려주면서, 손을 들어 남에서 북으로 북에서 동으로 돌려 보였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이 믿지 못하는 기색을 드러내자, 크게 화를 내며 갓끈을 잘라 불 속에 던지니 송진 냄새가 났습니다.

군수가 “내가 진정으로 믿겠다. 그러나 갓끈이 망가져 못쓰게 되었으니 장차 어찌 하겠느냐?”고 하자, 탄재는 집으로 달려가 무엇을 움켜쥐고 돌아왔는데, 모두 그런 종류들이었습니다. 태어나면서 벙어리인 사람은 반드시 귀머거리인데, 탄재도 벙어리이면서 귀머거리였으므로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을 할 수 없었습니다.

오직 고을 아전 가운데 손으로 말을 대신할 줄 아는 사람이 있어서 몸짓으로 말하면 서로 그 마음의 곡절을 다 표현할 수 있었으므로 매양 그가 와서 통역해주었습니다.

아전은 탄재보다 먼저 죽었는데, 탄재는 상가에 가서 널을 치며 종일 개처럼 부르짖었고, 얼마 안 되어 그도 병으로 죽었습니다. 탄재가 죽자 그가 만든 칼도 세상에 사라졌습니다.

매계자(梅谿子) 이옥(李鈺)는 말합니다.

“그가 상투를 자른 것은 자수(自守)하는 이와 닮았고, 호박을 알아본 것은 생지(生知)와 닮았다. 이 벙어리는 혹시 도(道)가 있는 자였는가? 그렇다면 그는 한갓 대장장이만은 아닐 것이다. 아! 아전이 죽으매 애통해하였으니, 지음(知音)의 어려움이란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말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는 장애인이면서 당당한 그의 모습이 존경스러워 19세기 조선 작가 이옥(李鈺)이 기록한 신아전(申啞傳)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봅니다.

최현숙 사회복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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