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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고지신] 외롭고 아픈 사람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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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고지신] 외롭고 아픈 사람만이
  • 전민일보
  • 승인 2015.09.18 10: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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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之有德蕙術知者 恒存乎疢疾

"사람이 덕행과 지혜, 기술과 지혜를 갖는 것은 언제나 재난과 환난에 처해있을 때이다"

남극관(南克寬, 1689∼1714)은 그 이름을 아는 사람은 드뭅니다. 숙종 때 명재상으로 이름을 날린 남구만(南九萬)의 맏손자라고 말해야 “아, 그렇습니까!”하고 고개를 끄덕일 정도입니다.

대갓집 맏손자로 태어났으니 온갖 복록을 누렸을 것 같지만, 불행하게도 그는 육 년 이상 각기병을 앓다 스물여섯이라는 너무 아까운 나이에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독서광이었습니다. 문밖출입을 하지 못하던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책을 읽는 것뿐이라고 해도, 그는 지독한 독서광이었습니다. 타고난 질병에다 독서로 안질까지 겹칠 정도로 읽고 또 읽었습니다.

남구만은 죽으면서 그에게 편지를 보내 자기 초상에 참석하지 말라고 유언했습니다. 병든 손자가 자기 초상에 참석하여 죽음을 재촉할까 봐 염려해서 였습니다. 그만큼 남극관은 죽어가면서도 책을 놓지 못했습니다.

죽기 바로 일 년 전, 제어할 수 없는 광적 독서에 스스로도 지쳤는지 남극관은 여름이 막 가고 가을이 시작되는 첫날 한 가지 시도를 하였다. 눈병과 심장병으로 고통 받던 그는 한 달 동안 책을 읽지 말자고 다짐하고는 날마다 있었던 일을 일기로 쓰기 시작합니다.

책에 대한 열망을 버리지 못하는 자신을 염려해서인데, 결과는 자신의 독서벽을 확인했을 뿐이었습니다. 한 달을 헤아려 보니 책을 읽지 않아 무사(無事)라고 쓴 날은 겨우 닷새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독서일기였습니다. 무사(無事)를 바랐던 그의 일기는 이렇게 끝을 맺었습니다.

“사람이 조바심 내기를 좋아하고 적막함을 참지 못하는 것이 정말 이렇구나. 저 명리(名利)에 날뛰는 자들은 또 어떻게 고치나?”

독서가 죽음을 재촉하여 결국 그는 이듬해 짧은 생애를 마감하였습니다. 눈여겨볼 것은 그 독서일기의 내용입니다. 젊은 학자의 소견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당돌한 논설이 곳곳에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학계와 문단에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자의 주장을 그는 좌충우돌 뒤집어 버렸습니다.

그의 사후문집이 나왔을 때 비난이 비등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요즘 나이로는 학자 지망생에 불과했을 사람의 주장으로서는 다부지게 자신에 차 있습니다. 당시 독서계의 조류에 휩쓸리지 않은 그의 주장은 다른 이의 생각 속에서는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맹자가 한 말 한 마디가 문득 떠오르게 하는 인물이었습니다.

사람이 덕행과 지혜, 기술과 지식을 갖는 것은 언제나 재난과 환난에 처해있을 때이다.

人之有德蕙術知者 恒存乎疢疾

그는 오로지 독서로 세상과 운명에 맞선 짧은 생을 살았지만, 누구보다 고귀한 지식을 남겨놓았습니다. 삶의 길이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몸의 건강과 물질의 복록을 누리는 게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병들고 버림받은 사람이 자신의 삶과 사회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맹자가 말했던 것처럼, 외롭고 아픈 사람만이 자기 마음을 다잡는 자세가 바르고 우환을 생각하는 마음이 깊기 때문에 세상에 통달할 수 있는지도 모릅니다.

김삼덕 보건행정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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