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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고지신] 가난하지 병든 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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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고지신] 가난하지 병든 게 아닙니다
  • 전민일보
  • 승인 2015.09.04 10: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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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미옥 조각가, 군산대 강사

 
無財謂之貧學道而不能行謂之病

“재산이 없는 것을 가난이라 하고

도를 배우고도 실천하지 못하는 것을 병들었다고 한다”

공자(孔子)의 제자 가운데 원헌(原憲)과 자공(子貢)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원헌은 제자 가운데 가장 가난했던 제자이고, 자공은 제자 가운데 가장 부유했던 제자입니다.

사마천(司馬遷)이 쓴 「사기열전」을 보면, 공자가 죽자 원헌은 궁벽한 곳으로 가서 숨어 사는데, 그는 술지게미나 쌀겨조차도 배불리 먹지 못할 정도로 가난했습니다.

그의 집은 사방 한 칸으로, 지붕은 잡초로 이었습니다. 문은 쑥으로 엮어 만들었는데 그마나 온전한 게 없었습니다. 깨진 항아리로 들창을 낸 방벽도 여기저기 구멍이 뚫려서 누더기 옷으로 틀어막았습니다. 천장에서도 비가 새고 방바닥은 늘 축축했습니다.

요즘말로 하면 똥구멍이 찢어질 정도로 가난한 살림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늘 바르게 앉아 거문고를 타고 노래하며 살았습니다.

그런 원헌을 위(衛)나라 재상으로 있던 자공이 찾아온 겁니다. 자공은 사두마차로 이어지는 기다란 행렬에 비단과 돈 뭉치를 들고 제후들을 찾아가는 까닭에 가는 곳마다 임금들이 몸소 뜰까지 내려와 맞이했을 정도로 부자였습니다.

그런 인물이니, 자공(子貢)의 행차가 얼마나 화려하고 요란했겠습니까? 그가 탄 사두마차가 원헌의 집골목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을 정도였습니다. 자공은 하는 수없이 수레에 내려 지저분한 골목길을 걸어갔고, 원헌은 집안으로 나와 자신을 찾아온 선배를 공손하게 맞이합니다.

자공은 원헌을 보고 깜짝 놀랍니다. 가죽나무 껍질로 만든 허름한 갓과 뒤꿈치가 다 떨어진 신발, 그리고 명아주 지팡이에 의지해 겨우 서있는 원헌의 모습은 거지 중에서도 상거지가 따로 없기 때문입니다.

자공은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쉬며 말합니다.

“세상에!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오. 무슨 병이라도 든 것이오?”

행색이 너무나 초라하다보니, 자공은 원헌이 무슨 병이라도 걸린 게 아니냐고 물은 겁니다. 원헌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빙그레 웃으면서 자신은 가난한 것이지 병든 게 아니라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재산이 없는 것을 가난이라 하고, 도(道)를 배우고도 실천하지 못하는 것을 병들었다고 한다.(無財謂之貧學道而不能行謂之病)

공자 제자 가운데 가장 부자인 자공이 가장 가난한 원헌에게 한방 먹는 순간입니다.

과연 자공은 뭐라고 말했을까요? 그는 말 한 마디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발길을 돌렸고, 그런 자공에게 원헌은 한 마디 더 던집니다.

“세상 눈치 보면서 행동하고, 꿍꿍이 속셈으로 남과 교제하는 일, 남에게 자랑하기 위해 배우고, 자기 좋은 대로 가르치는 일, 인의(仁箋)를 내세우며 나쁜 짓을 일삼고, 자가용 수레나 치장하는 일, 나는 그런 일은 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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