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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고지신] 큰 그릇은 더디게 만들어지는 법이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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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고지신] 큰 그릇은 더디게 만들어지는 법이라오
  • 전민일보
  • 승인 2015.08.10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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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서영 전주교육대학교 평생교육원 교수

 
大方無隅大器晩成

“큰 네모는 모서리가 없고

큰 그릇은 더디게 만들어지는 법이라오”

김득신(金得臣, 1604~1684)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조선(朝鮮) 중기(中期)의 시인(詩人)으로 자는 자공(子公)이고 호는 백곡(栢谷)입니다.

임진왜란 때 진주대첩으로 유명한 충무공 김시민(金時敏)의 손자이기도 한 그는 경상감사를 지냈던 안흥군 김치(金緻)와 목첨(睦瞻)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태어날 때 아버지가 꿈을 꾸어 노자(老子)를 만났다고 해서 아이 적 이름을 몽담(夢聃)으로 지었습니다. 노자의 또 다른 이름인 노담(老聃)을 꿈에서 만났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김득신은 명문사대부의 자손에다가 신통한 태몽까지 꾸고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머리가 지독하게 나빠 모든 게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뒤처졌습니다.

열 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글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글을 익히고 문장을 짓는 일에는 도통 재주가 없었습니다.

방금 읽고 외운 문장도 돌아서면 까마득히 잊어버렸습니다. 한심하다고 할 정도여서 사람들은 저런 둔재가 어디 있느냐며 혀를 찼습니다.

집안에서도 그에 대한 기대를 버리고 차라리 양자를 들어 과거를 보게 하라고 성화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아둔한 아들을 가르치고 또 가르쳤습니다. 누가 뭐라고 할 때마다 그의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큰 네모(大方)는 모서리가 없고, 큰 그릇은 더디게 만들어지는 법이라오.(大方無隅大器晩成)

지금은 저리 미욱하지만 공부를 포기하지 않는 걸 보면 언젠가는 빛을 볼 날이 있을 거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떠듬떠듬 더디게 나아간 끝에 김득신은 나이 스물이 되어서야 비로소 글 한 편을 지었습니다.

남들은 이미 과거에 합격하는 나이에 겨우 글 한 편을 지었는데, 아버지는 너무 감격해서 말합니다.

“그래 참 잘했다. 그런 식으로 열심히 노력해라. 공부는 꼭 과거를 보기 위해서만 하는 게 아니니 더욱 열심히 해라.”

자식의 둔함과 어리석음을 창피하게 여기기보다는 더욱 열심히 하면 된다는 아버지의 격려 덕분인지, 김득신은 주변의 놀림과 빈정거림에도 끄덕하지 않고 자신만의 특별한 공부 방법으로 노력에 노력을 거듭했습니다.

그 방법이란 게 별 거 아니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몇 십 번 읽을 때 자신은 몇 백 번이나 몇 천 번 읽고, 다른 사람이 몇 백 번 읽으면 자신은 몇 천 번이나 몇 만 번 읽는 것입니다.

그는 남들이 즐겨 읽는 글 수백 편을 뽑아놓고 밤낮으로 읽고 또 읽었습니다. 잠을 잘 때도 책을 늘 머리맡에 두고 잤습니다. 잠에서 깨어 책을 가만히 손으로 만지면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겁니다.

이렇게 남들보다 몇 배 더 많은 시간을 들여 공부해서, 마침내 끝내는 효종 임금(1649~59 재위)이 그의 시를 가리켜 당나라 사람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문장이라고 높게 평가한 시인이 되었습니다. 참으로 본받을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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