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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고지신] 비극은 두가지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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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고지신] 비극은 두가지 밖에 없다
  • 전민일보
  • 승인 2015.07.24 10: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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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미옥 조각가 군산대 강사

 
邦有道穀邦無道穀恥也

“나라에 도가 있을 때는 봉록을 받지만

나라에 도가 없는데 봉록을 받는 것이 부끄러움이다”

영국 작가 오스카 와일드(O.Wilde, 1854∼1900)는 사람에게는 단지 두 종류의 비극이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는 마음속으로 생각한 일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마음속으로 생각한 일이 이루어진 것인데, 이 말을 들으면 한번쯤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됩니다.

마음속으로 생각한 일이 이루어지지 않은 게 비극이라는 말은 알겠는데, 마음속으로 생각한 일이 이루어진 것도 비극이라는 말은 얼른 와 닿지 않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무슨 뜻일까요?

마음속으로 생각했는데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에는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겁니다.

시험을 잘못 보아 원하는 대학이나 직장에 들어가지 못하거나 사업에 실패하여 앞길이 막막한 경우에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친구나 애인하고 심하게 다투고 헤어졌을 때는 누구나 상심하고 절망에 빠지게 됩니다.

그런데 마음속으로 생각한 일이 이루어진 경우도 비극일까요? 이것은 조금 복잡합니다.

이를테면 마음속으로 생각한 일이 이루어진 뒤 자신이 성취한 것과 원래 기대했던 것 사이에 큰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어떤 학생은 원하는 대학에 진학했는데 대학이란 곳이 자기가 그렇게 가고 싶어 했던 천당이 아니었음을 깨닫는 것처럼 말입니다.

어떤 사람은 반평생 뼈 빠지게 노력해서 돈을 벌고 난 뒤 돈이 많다고 해서 꼭 행복한 것은 아님을 깨닫습니다. 어떤 일을 성취하고 난 뒤에 생각해 보니, 그 일은 자신이 온 힘을 기울일 가치가 없다는 것입니다. 흘러간 시간은 다시 오지 않고 성취한 일은 한 줌의 모래처럼 아무 의미 없이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일을 누구나 한두 번씩 겪었을 겁니다.

원헌(原憲)이라는 제자가 스승인 공자에게 부끄러움(恥)에 대해 묻자, 공자가 이렇게 말합니다.

나라에 도가 있을 때는 봉록을 받지만, 나라에 도가 없는데 봉록을 받는 것이 부끄러움이다.(邦有道穀邦無道穀恥也)

나라에 도가 있을 때 봉록을 받는 건 괜찮지만, 나라에 도가 없는데도 봉록을 받는 것은 부끄러운 짓이라는 겁니다.

왜 그럴까요? 도가 없을 때 이룬 성공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얻었거나 타인의 고통을 바탕으로 이룬 것일 가능성이 많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혼란한 시대에 출세하고 영달을 누리면 존경받지 못하고 모범이 되지 못하는 수가 많습니다.

그런데 공자가 “방유도곡 방무도곡 치야(邦有道穀 邦無道穀 恥也)”라고 한 말을 “나라에 도가 있을 때도 봉급을 받고, 도가 없을 때도 봉급을 받는 것이 부끄러움이다.”고 해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떻게 되어도 괜찮다며 봉급만을 받는 것은 부끄러운 짓이라는 뜻인데, 이럴 경우 오스카 와일드의 논리와 비슷해집니다. 참 재미있지요? 이렇게도 해석할 수 있고, 저렇게도 해석할 수 있는 게 한문 공부의 매력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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