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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고지신] 가난할 뿐이지 곤궁한 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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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고지신] 가난할 뿐이지 곤궁한 게 아닙니다
  • 전민일보
  • 승인 2015.07.22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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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원 사업가

 
貧也非憊也

“가난할 뿐이지 곤궁한 건 아닙니다”

노자(老子)와 함께 도가(道家)사상을 대표하는 장자(莊子)가 위(魏)나라 왕을 찾아갔을 때 벌어진 이야기입니다.

장자가 거친 베로 누덕누덕 기운 옷을 입고 다 떨어진 신을 삼끈으로 얽어 묶은 거지꼴로 위(魏)나라 왕을 찾아갔습니다. 거지 가운데도 상거지 꼴로 말입니다.

그런 모습으로 감히 왕 앞에 선 장자에게 위나라왕이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선생은 어째서 이렇게 곤궁해졌소?”라고 묻자, 장자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대답합니다.

가난할 뿐이지 곤궁한 건 아닙니다.(貧也非憊也)

자신은 가난한 것이지 곤궁한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가난한 것과 곤궁한 것은 다르다는 말인데, 위나라 왕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묻습니다.

“가난할 뿐이지 곤궁한건 아니라니요, 그게 무슨 말이요?”

장자는 그렇게 물을 줄 알았다는 듯이 빙긋이 웃으면서 대답합니다.

“선비는 마음에 도와 덕을 지니면서 실천하지 못할 때 곤궁하다고 하는 겁니다. 해진 옷을 입고 구멍난 신발을 신은 것은 가난한 것일 뿐이지 곤궁한 게 아니지요. 이렇게 곤궁하게 보이는 것은 때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때를 만나지 못했다니요, 그건 또 무슨 말이오?”

“왕께서는 설마 나무에 오르는 원숭이를 보지 못하시지는 않으셨겠지요? 원숭이가 녹나무나 가래나무처럼 큰 나무에 올라가 가지를 거머쥐고 이리저리 의기양양하게 다닐 때는 예(?)나 봉몽(逢蒙)처럼 활의 명수라 하더라도 쏘아 맞출 수가 없지요. 그러나 가시나무나 탱자나무처럼 가시가 많은 나무에 있을 때는 조심스럽게 움직이고 이리저리 곁눈질하며 부들부들 떱니다. 두려워서요. 어째서 그럴까요?”

“어째서 그러기는 뭘 어째서 그래요, 가시에 찔릴까봐 그렇지.”

“나무를 잘 타는 원숭이의 능력이 없어져서 그럴까요?”

“아니지요, 타고난 능력이 하루아침에 없어지는 법이 어디 있어요.”

“그렇습니다. 나무를 잘 타는 능력이 없어져서 벌벌 떠는 게 아니라, 그가 처한 환경이 달라졌기 때문이지요. 가시가 있는 나무에서는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기 때문에 그렇게 전전긍긍하는 것이지요.”

“그래서요?”

“사람도 똑같지요.”

“똑같다니요? 도대체 뭐가 똑같다는 거요?”

“지금처럼 어지러운 세상에서는 올바른 선비일수록 제 구실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지금처럼 혼미한 임금과 어지러운 신하들 사이에서 나는 선비네 했다가는 어느 손에 맞아 죽을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선비라면 어찌 힘들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나섰다 하면 곤경에 빠질텐데요. 안 그렇습니까?”

위나라 왕은 과연 뭐라고 대답했을까요? 참으로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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