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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고지신] 모든 게 명예라는 것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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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고지신] 모든 게 명예라는 것 때문에
  • 전민일보
  • 승인 2015.07.20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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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서영 전주교육대학 평생교육원 교수

 
年年歲歲花相似歲歲年年人不同

“해마다 피는 꽃은 서로 비슷하지만,

해마다 보는 사람은 같지 않구나”

중국 당(唐)나라 때 송지문(宋之問)이라는 시인이 있었습니다. 측천무후(則天武后) 때 여러 벼슬을 지내면서 권력(權力)에 아첨(阿諂)하여 추악(醜惡)한 짓을 거듭했던 인물인데, 어울리지 않게 율시(律詩) 형식(形式)을 완성(完成)했던 인물로도 유명합니다.

그가 나름대로 이름을 얻었지만, 워낙 기라성 같은 작가들이 즐비했던 시절이라 그리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했던 까닭에 늘 전전긍긍하던 때의 일입니다.

그에게 외가쪽 조카로 유희이(劉希夷)란 청년이 있었습니다. 유희이는 젊은 나이에 과거에 급제했던 우수한 인재로 시도 잘 지었습니다. 그가 지은 작품으로 “백발의 늙은이를 대신 서러워하노라.”라는 뜻인 ‘대비백두옹(代悲白頭翁)’이란 제목의 시가 있는데, 그 시구 가운데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해마다 피는 꽂은 서로 비슷하지만, 해마다 보는 사람은 같지 않구나.(年年歲歲花相似歲歲年年人不同)

해마다 피는 꽃을 보면 그 꽃이 그 꽃처럼 보이는데, 그 꽃을 보는 사람은 똑같지 않다는 겁니다. 늙어서 모습이 변하거나 병들어 죽으니 보이는 건 다른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송지문은 이 구절을 보고 홀딱 반했습니다. 이미 세상에 발표했느냐고 물었더니, 아직 발표하지 않은 작품이라는 겁니다. 그는 유희이에게 이 구절을 달라고 졸랐습니다. 글귀는 간단하지만 담긴 뜻이 깊어서 자기 작품 속에 넣어 발표하기만 하면 틀림없이 세상에 깜짝 놀랄 것이고, 시사(詩史)에도 이름이 길이 남을 것으로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집안 아저씨가 졸라대자 유희이는 별생각 없이 드리겠다 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후회하며 그 구절은 사실 자기가 지은 것이라고 말해버렸습니다. 말할 것도 없이 송지문은 톡톡히 망신을 당했고, 화가 몹시 나서 몰래 사람을 시켜 유희이를 죽여 버립니다. 결국 유희이는 서른을 못 넘기고 비명횡사했고, 뒷날 송지문은 다른 악행까지 드러나 황제의 명으로 처형됩니다. 모든 게 명예라는 것 때문에 일어난 비극입니다.

옛사람들은 틈만 나면 명예나 이익에 눈을 돌리지 말라고 말합니다. 그릇된 방법으로 얻는 명예는 물론이고 정당한 방법으로 얻은 명예까지 멀리하라고 합니다. 명예를 좇는 길의 끝이 죽음이라는 걸 그들은 너무 많이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미 세속에 물들어버린 우리는 차마 그렇게까지 마음을 비우기가 쉽지 않겠지요. 그저 명예와 이익이 삶의 굴레라는 것을 깨닫기만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굳이 악착스럽게 살아가지는 않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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