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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고지신] 달은 그 달이고 꽃도 그 꽃이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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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고지신] 달은 그 달이고 꽃도 그 꽃이건만
  • 전민일보
  • 승인 2015.07.08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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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덕 보건행정학 박사, 원광대학교 강사

 
年年歲歲花相似歲歲年年人不同

“해가 가고 또 가고 꽃은 비슷하지만,
또 가면 사람들은 같지 않다네”

중국 북송(北宋) 때인 원풍 6년(1083) 10월 12일 밤입니다. 지금의 호북성(胡北省) 황주(黃州)에 귀양 온 시인 소동파(蘇東坡, 1036~1101)가 밤이 깊어 옷을 벗고 불을 끕니다.

방에 누워 자려고 하는데 달빛이 방 안으로 들어옵니다. 어찌나 아름다운지 다시 일어나지만, 방안에는 자기 혼자뿐입니다. 아름다운 달빛을 함께 즐길 사람이 없습니다.

그는 일어나 옷을 다시 입고 근처에 있는 승천사(承天寺)로 갑니다. 때마침 그 절에는 그리워하던 벗 장회민(張懷民)이 머물고 있기 때문입니다.

승천사에 이르러 벗을 찾으니, 그도 아직 잠자리에 들지 않았습니다. 달빛은 그의 방도 아름답게 수놓았던 것입니다.

두 사람은 말없이 절 앞마당을 거닙니다. 절 앞마당은 마치 물이 가득 찬 호수 위에 밝은 달이 떠있고, 물속엔 아름다운 물풀들이 뒤엉켜있는 것 같습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대나무와 잣나무의 그림자입니다. 말없이 걷던 소동파가 이윽고 한 마디 합니다.

“어느 밤이고 달이 없겠는가? 어느 곳엔들 대나무와 잣나무가 없겠는가? 다만 우리 두 사람처럼 한가로운 사람이 적었을 뿐이지.”

소동파가 쓴 ‘승천사의 밤나들이(記承天寺夜遊)’란 글에 나오는 한 구절입니다. 과연 최고시인만이 할 수 있는 표현입니다. 소동파의 말이 아니더라도, 달은 어느 밤이나 뜨고, 나무 그림자는 어느 곳에나 있습니다.

하지만 그날 밤 소동파가 보았던 달빛, 그 달빛에 이끌려 벗을 찾아가는 일, 벗과 함께 거닐던 절 앞마당에 비친 대나무와 잣나무의 그림자, 그 그림자를 말없이 바라보는 일은 단 한 번밖에 주어지지 않는 것들입니다.

그날 밤이 지나고 나면 다시는 볼 수 없습니다. 모두가 그 날 밤의 달이고, 그날 밤의 그림자일 뿐입니다.

해가 가고 또 가도 꽃은 비슷하지만, 해가 가고 또 가면 사람들은 같지 않다네.(年年歲歲花相似歲歲年年人不同)

당(唐)나라 때 시인 송지문(宋之問, 656 ~ 712)이 지은 시 ‘유소사(有所思)’의 두 구절입니다. 해가 바뀌고 또 바뀌어도 꽃은 그 꽃인데, 그 꽃을 보는 사람은 그 사람이 아니라는 겁니다. 참으로 멋진 말이지요. 이렇게 멋진 말 때문에 사람을 죽였다는 말이 전해지기도 합니다.

본디 송지문의 사위인 유희이(劉希夷)가 지은 것인데, 송지문이 사위를 죽이고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있는 시입니다. 그만큼 명시(名詩)라는 겁니다. 송지문 같은 대시인이 시 구절 하나가 탐나서 사위를 죽였다는 이야기는 신빙성은 없고, 이 두 구절이 너무나 훌륭하여 생겨난 것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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