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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고지신] 아무리 머뭇거리고 망설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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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고지신] 아무리 머뭇거리고 망설여도
  • 전민일보
  • 승인 2015.06.22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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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덕 원광대학교 강사

 
與兮若冬涉川猶兮若畏四隣

“머뭇거리는 모습은 겨울에 냇물을 건너려는 것 같고
망설이는 모습은 사방에 있는 이웃을 무서워하는 것 같다”

조선의 실학을 집대성했다는 명성을 얻고 있는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이 39세 때인 1800년 6월 28일, 조선의 르네상스를 꿈꾸던 정조(正祖) 임금이 갑작스럽게 죽자, 누구보다도 절망했던 사람이 다산입니다. 그는 정조에게 남다른 사랑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정조와 다산은 단순한 군신관계를 넘는 동지이자 가족이었습니다. 다산에게 정조는 임금이며 아버지 같은 존재였습니다. 정조는 다산에 대한 공격을 모두 막아주던 자애로운 아버지 같은 존재였으니, 정조의 죽음은 다산에게 하늘이 무너진 것이었습니다. 정조의 죽음은 신세대가 몰락하고 구세대가 다시 살아나는 반동의 시작이고, 개방과 다양성의 문이 닫히고 노론 일당의 폐쇄와 획일의 시대가 열리는 시작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정조의 시신이 채 식기도 전에 다산을 공격하는 말들이 떠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이가환과 정약용 무리들이 앞으로 난리를 꾸며 4흉8적(四凶八賊)을 제거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이른바 同列은 노론 벽파의 재상들과 당대의 이름 있는 명사들, 그리고 그런 소문을 만든 당사자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정조의 죽음으로 부모 잃은 고아 꼴이 된 이가환과 정약용 무리들이 4흉8적을 제거하려 한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말이었습니다.

하지만 노론 벽파에게 중요한 것은 소문의 사실 여부가 아니라 이가환과 정약용을 제거하는 일이었습니다.

다산은 재앙의 낌새가 날로 급박해짐을 헤아리고 처자를 고향 마재로 돌려보냅니다. 홀로 서울에 남아 세상 변해가는 것을 눈여겨보다가, 졸곡(卒哭)이 끝나는 겨울에는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그는 초하루나 보름날 벼슬 순서에 따라 차례로 열을 지어 곡하는 곡반(哭班)때만 서울로 올라갔고, 다른 때는 고향땅에서 책을 읽으며 세상을 잊고자 했습니다. 이제 다시는 세상에 나서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고향집에 여유당(與猶堂)이라는 당호도 내걸었습니다. 앞으로는 더욱 신중하게(與) 머뭇거리며(猶) 살겠다는 뜻인데, 여유(與猶)란 말을 노자(老子) 「도덕경(道德經)」에 나오는 말입니다.

머뭇거리는 모습은 겨울에 냇물을 건너려는 것 같고, 망설이는 모습은 사방에 있는 이웃을 무서워하는 것 같다.(與兮若冬涉川猶兮若畏四隣)

무릇 겨울에 내를 건너는 사람은 차가움이 파고 들어와 뼈를 깎는 듯할 터이니 몹시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하지 않을 것이며, 온 사방이 두려운 사람은 자기를 감시하는 눈길이 몸에 닿을 것이니 참으로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겁니다.

하지만 노론 세력은 자신들의 정치 라이벌이 될 수 있는 이를 결코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노론이 모든 권력을 장악한 조선에서 남인으로 산다는 것은 그토록 가혹한 일이었습니다.

결국 정조임금의 서거와 함께 다산은 기나긴 유배생활을 합니다. 그것이 정녕 공자가 말하는 천명(天命)일까요? 그리고 오늘날 정치판에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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