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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고지신] 좋은 글과 나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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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고지신] 좋은 글과 나쁜 글
  • 전민일보
  • 승인 2015.06.01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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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미옥 조각가 군산대학교 강사

 
房一間 退一間 宜夏宜冬 壬戌孟冬 眉叟

“방 한 칸에 퇴 한칸. 여름에도 좋고 겨울에도 좋다
임술 10월 미수”

정민의 「스승의 옥편」이라는 책을 보면, 1958년에 간행된 조준경의 「야화선집(野話選集)」에 소한정기(小閑亭記)란 글이 실려 있습니다.

소한정은 태인에 있던 동부승지 임낙구(林洛九)의 정자 이름입니다. 내용은 임낙구가 당대의 쌍벽을 이루었던 송시열과 허목에게 기문(記文)을 받은 이야기입니다.

임낙구는 먼저 허목에게 글을 받고, 마음에 안 들어 다시 송시열을 찾아갔고, 송시열은 그를 위해 다음과 같은 글을 써주었습니다.

소한정은 태인군 산내 용두봉 기슭에 있다. 주인은 춘관(春官) 나주 임익중의 후예인 동부승지 임낙구다. 낙구가 실로 내게 기문을 청해 말하기를……이에 경치가 빼어난 곳에 정자를 지었다.……돌아가 처마 사이에 이를 새겨두기를 청하노라. 임술년 10월 우암 송시열.

거의 이 백여 자나 되는 글을 다 지은 송시열은 임낙구가 자신에게 오기 전 허목의 글을 받은 것을 뒤늦게 알고, 그 글을 보자고 했습니다.

임낙구가 건네준 허목의 글은 이러했습니다.

방 한 칸에 퇴 한 칸. 여름에도 좋고 겨울도 좋다. 임술 10월 미수
房一間 退一間 宜夏宜冬 壬戌孟冬 眉叟

날짜를 빼면 본문이래야 딱 열 자밖에 안 되는 짧은 글이었습니다.

한참을 뚫어지게 그 글을 보던 송시열은 아직 먹이 채 마르지도 않은 자신의 글을 도로 달라고 합니다. 도대체 왜 그러느냐는 임낙구의 물음에 송시열은 자기의 글을 그 자리에서 북북 찢어버리면서 말합니다.

“이것으로 하게. 이 글에 비하면 내 글은 애기 글일세.” 송시열은 꾸밈 하나 없고 간결하기 그지없는 허목의 글 앞에, 의례와 격식을 갖춘 자신의 화려한 글을 내놓기가 부끄러웠던 겁니다.

물론 뒷사람이 만들어낸 이야기라고 합니다.

과연 어떤 글이 좋은 글인가? 옛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가슴속은 텅 비어 든 것이 없는데 한갓 겉만 꾸민다. 번지르르하게 바르는 것을 문사로 생각하고 아로새겨 꾸미는 것을 글이라고 여긴다. 스스로는 천하의 공교로움을 다했다고 여겨도 쓸데없는 빈말에 지나지 않는다. 식견이 높은 사람은 글도 높고, 식견이 낮은 사람은 글도 낮다. 글이 좋고 나쁨은 문장에서 생겨나는 게 아니라 식견에서 생겨난다. 식견은 뿌리이고, 글은 가지와 잎새다. 뿌리가 튼튼한데도 가지와 잎새가 무성하지 않은 것은 없다. 식견 기르기에 힘쓰지 않고, 문장 잘하기만을 구하는 자는 망령되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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