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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 JP 연가(戀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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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 JP 연가(戀歌)
  • 전민일보
  • 승인 2015.03.11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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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상록 칼럼니스트

 
“뭐 하다 왔어요? 보니 이런 일 할 분이 아닌데.. 사람은 다 자기 일이 있어요. 자신의 일을 하세요.” 일용인부로 나간 현장관리자에게서 들은 말이다. 그의 말엔 처음 본 나에 대한 모욕이나 조롱이 아닌 안타까움과 연민이 담겨있었다.

바로 그 해 2004년, 국회에서 고(故)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彈劾訴追)가 의결됐다. 그 해가 내게도 특별했던 것은 앞의 두 상황과 무관치 않다. 전 해인 2003년 국회의원 인턴보좌관 제의를 받았지만 정중히 거절했었다. 난 우여곡절 끝에 국회에서 새로운 삶을 설계하기로 했다. 그리고 탄핵안이 의결되는 현장에서 그 광경을 목격했다.

그 후 상황은 내 늦은 출발에 또 다른 선택을 강요하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그럼에도 그 길지 않은 시간이 내게 상처만 남긴 것은 아니다. 지금의 생활을 가능하게 해준 소중한 자산이 있기 때문이다. 당시 근무했던 의원회관 5층에는 현 대통령을 비롯해 인상 깊은 정치인들이 많이 자리하고 있었다.

제한적이긴 하지만 정치현장에서 바라본 그들의 모습은 편집돼 전달되는 것과는 분명 차이가 존재했다. 그 중엔 대중적 인기는 물론 권력실세로 평가받는 정치인이 막상 보좌진들에겐 형편없는 인격의 소유자로 비춰지는 모습도 있었다.

가진 권력과 능력이 인격에 비례하는 것은 아니듯 대중의 인기도 거기서 예외가 아니었다. 상식이지만, 말 그대로 ‘직업으로서의 정치’다. 다른 모든 분야가 그렇듯 정치에서의 성공과 삶에서의 성공이 꼭 같을 수는 없다. 그런 점에서 JP(김종필 전 총리)가 최근 부인을 떠나보내며 남긴 말은 의미심장하다.

“정치는 허업(虛業)이다.” 흔히 ‘풍운아(風雲兒)’라고 하지만 JP 만큼 극적인 삶을 산 사람도 많지 않다. 평생의 반려자를 떠나보낸 그의 모습에서 슬픔만 제거한다면 그는 여전히 열정적이다. 그에겐 수많은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그 중에서도 ‘대통령 빼고 못한 것이 없는 사람’이라는 표현은 그의 삶을 응축해 보여주고 있다. 화려함과 아쉬움이 공존하는 그의 삶이다. 여기서 나는 그의 정치역정에 대한 얘기를 할 생각이 없다.

다만 그가 정치인으로서 어떤 평가를 받을 것인가와는 별개로 그의 개인적 삶만큼은 만인의 부러움을 사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한 여인에 대한 사랑을 통해 그것을 충분히 증명했다. JP는 정치인을 포함해 그와 동시대를 산 실력자 중에 여자문제가 없는 거의 유일한 사람이다.

혹자는 이렇게 얘기한다. ‘부인이 박정희 전 대통령 조카인데 감히 바람 필 수 있었겠어.’하지만, 많은 증언들은 여자문제에 관한 한 박정희 전 대통령은 자신에게 그랬던 것처럼 부하들에게도 관대했다고 한다. 심지어 정적(政敵)에게까지도. 가치를 배제하고 행태만을 얘기할 때, 부와 권력이 있으면 여자가 따르는 것은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막론한다.

JP는 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오직 한 여인이면 충분했다. 그는 결혼 당시 부인에게 로버트 브라우닝(Robert Browning)의 시 한 구절을 바쳤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이 바친 시구처럼 살았고, 영혼의 반려를 떠나보냈다. 그는 죽어서도 먼저 간 자신의 아내 곁으로 가겠다고 한다.

고향을 떠나 예산(禮山)으로 간다고 하자 많은 사람들이 내게 물었다. ‘도대체 왜 아무 연고도 없는 곳으로 가는 가’그에 대해 나는 이렇게 답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서 갑니다.’거기에 거짓은 없다. 그럼에도 어쩌면 나는 영원히 내 말에 대한 책임을 지지 못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내가 JP에게 부러운 것은 ‘대통령 빼고 못한 것이 없는 사람’이 아니다. 과연 나는 삶이 다하는 그 날까지 누구에게 브라우닝의 시구를 얘기할 수 있을까. ‘Once, only once, and for one only(한 번, 단 한 번, 단 한 사람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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