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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겠다” 라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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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겠다” 라는 말
  • 전민일보
  • 승인 2015.02.12 14: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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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무라 에미코 통역사

 
한국 사람들은 “예뻐 죽겠다”라는 말을 많이 한다. 그 반대로 “미워 죽겠다”라는 말도 잘 듣는다. 감정을 나타내는 형용사인 “예쁘다”, “밉다”에 “죽겠다”라는 동사를 붙이는 것으로 그 감정을 더욱 강조하는 표현인 것은 분명하다. “매우 예쁘다”, “매우 밉다”보다 더 깊이 느끼는 상태라고 파악된다. “죽다”까지 붙는데 나의 모국에도 이와 같이 닮은 표현이 있다. 그러나 사용되는 방법이 조금 다른 것 같다.

예를 들면, “예뻐 죽겠다”를 애완동물을 대상으로 쓰는 경우는 아무 문제가 없다. 그때의 감정에 따라 “최고!”라고 생각하면, “예뻐 죽겠다”라고 하는 것이 그 상황에 잘 어울린다.

문제는 가족이나 친구 등 자신과 친밀한 사람에게 사용되는 경우에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할아버지 할머니는 손자를 보고 “예뻐 죽겠다”라고 잘 말씀하신다. 하지만 조금 전 손자에게 “예뻐 죽겠다”라고 한 할머니도, 손자가 말을 듣지 않으면 곧바로 “미워 죽겠다”로 말을 돌린다. 이에 반해 일본에서는 손자가 사랑스러운 것이 당연한 일인데도 “예뻐 죽겠다”까지는 입에 쉽게 하지 않는다. 그렇게 예뻐해도 본인은 “정말 예쁘다”정도로 끝나는 것 같다.

일본 사람의 감정표현이 소극적인 일면도 있겠지만, “죽겠다”까지 붙이면, 말이 갑자기 무거워진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끼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예쁘다”, “밉다”와 “산다”, “죽는다”는 차원이 다르다. 서로 관련되긴 해도 생명을 움직여 가면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에게 있어서 “생사(生死)”는 보다 근원적인 생명 활동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 “생사”가 걸릴 정도의 “예쁘다”, “밉다”라면 그것은 얼마나 대단한 것일까? “예뻐 죽겠다”는 그 상대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야 한다. “미워 죽겠다”가 진심이라면, 그 미움때문에 본인이 정신병에 걸릴 정도고, 아니면 상대를 저주해 죽일 정도로 원망하거나, 아니면 상대를 실제 해칠 정도로 미워해야 말이 맞다.

“예뻐 죽겠다”가 일본에서 나올 상황을 생각해보면, 그것은 연애가 한창인 남녀의 관계가 아닐까 생각한다. 입에 대는 것이 부끄러울 정도로 무거운 말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내는 귀한 말이 된다. 또한 “예쁘다”, “밉다”는 감정이기 때문에 결코 안정된 것이 아니다. 언제 변할지도 모른다는 측면을 항상 안고 있기 때문에 깊은 인상을 주는 말이 된다.

어쨌든 한국어에서는 “죽겠다”가 쉽게 붙는다. 그런데 “피곤해서 죽겠다”나 “아파 죽겠다”가 되면 들어도 그렇게 이상하지 않다. 지쳐서 죽을 수도 있고, 아파서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일까? 그러고 보면 아이를 낳을 때도 한국의 엄마들은 아픔을 참지 못해 “죽겠다”고 외치면서 그 고통의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산모가 일본 사람인 경우 “아?!”나 “우?!”등 소리를 외치긴 하지만 대체적으로 한국의 산모보다는 꽤 얌전한 것 같았다.

한국의 할머니들도 자신이 비참하게 느끼면 “빨리 죽어야지”라고 쉽게 말을 한다. “그렇지만 그렇게 말하시는 할머니들은 쉽게 가시지도 않아! 몸에 좋은 것을 좋아해서 보약만 섭취한다.”라고 전에 한 한국인의 엄마와 웃으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일본어로 느낄 만큼 한국 사람은 “죽겠다”라는 말에 깊은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것 같다. 솔직히 말하면 삶과 죽음에 대한 말을 매우 가볍게 하는 느낌이다.

사람은 언젠가 꼭 죽는다. 그래서 “죽겠다”라는 말이 사실 잘못은 아니다. 그렇지만 “죽겠다”라는 말을 함부로 사용하는 것으로 무의식적으로 그 말에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한국의 자살률은 OECD국가 중에서 1위이다.

우리 남편이 나의 앞에서 “죽겠다”라고 말하면 재빠르게 주의를 준다. “나 같이 좋은 부인을 얻어놓고 죽겠다니 실례하네. 다시 한 번!”, 그러면 남편은 얼른 말을 고쳐서 입에서 “살겠다!”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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