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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슴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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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슴도치
  • 전민일보
  • 승인 2015.01.30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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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선 한일장신대 인문학부 교수

 
모방송국에서 매주 주말 방송하는 동물 다큐멘터리 텔레비전 프로그램 가운데 ‘동물의 왕국’이 있다. 주로 해외 방송국에서 제작한 동물 다큐멘터리를 소개하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다.

대부분 동물은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할 때 대개 떼를 지어다닌다. 누뿐만 아니라 영양, 들소와 같은 초식동물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사는 곳에 물이 마르거나 풀이 없으면 촉촉한 초원을 찾아 무리지어 삶의 터전을 옮긴다.

이동하는 과정에서 사자나 치타와 같은 육식동물에게 잡혀 먹잇감이 된다. 이동하지 않으면 죽을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기 때문에 목숨을 걸고 이동한다.

그러나 고슴도치는 혼자 다닌다. 그래서 고슴도치는 외롭고 쓸쓸한 존재이다. 고슴도치는 외로움을 달래보려고 주변에 있는 이웃에게 다가간다. 특히 북미산 고슴도치는 자기 등에 있는 3만 개정도에 이르는 가시로 인해 자기 의도와는 관계없이 상대를 찔러 상처를 안긴다.

‘고슴도치 딜레마’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독일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고슴도치 우화에서 나온 것이다. 고슴도치는 추위를 느낄 때 서로 옹기종기 가깝게 모이지만 너무 가까우면 서로 가시에 찔러 상처를 입고 서로 떨어지면 추워서 어쩔 줄 모르는 상태를 일컫는다.

너무 가까이 하지도 너무 멀리 하지도 말고 적당하게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과 서로 통하는 말이다. 이 말은 인간관계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잠언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세상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여러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그런데 적당한 거리라는 것이 애매하고 이런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이 참 어렵다. 고속도로를 달릴 때 차량 사이 안전거리를 100미터정도로 권장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이 거리를 지키는 운전자는 거의 없다.

이렇듯 어떤 계량화한 거리도 지키기 힘든 상황에서 어떤 사람과 적당하게 관계를 유지하는 일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러나 혹독한 추위를 이기려고 누군가가 그리워 다가가는 것이 상대에게 아픔이 되기 때문에 혼자서 추위에 떨어야 한다면 하나님 뜻과 상치한 게 아닐까.

작년에 어느 지인이 꾸찌뽕나무를 10여 그루 주었다. 가시가 어른 새끼손가락만큼 길고 쇠바늘처럼 뾰쪽해 옆에 가는 것조차 겁이 났다. 그래서 집안에 심지 못하고 집 인근 야산 한갓진 곳에 심었다. 이렇듯 꾸찌뽕나무는 자신이 가진 뾰쪽한 가시 때문에 정원에 자리하지 못하고 집밖으로 밀려났다.

그동안 내가 가진 날선 가시로 인해 이웃을 아프게 한 적이 더 많지 않았을까. 때로는 언어를 통해서 상대의 약점을 뒤집어 팠을 수도 있고 때로는 행동을 통해 이웃을 아프게 했을 수도 있다. 상대를 도와준답시고 한 언행이 상대에게 짐이 되고 아픔이 된 일도 있었을 것이다. 다만 내가 가진 수많은 가시에 가려 그것을 못봤을 뿐이다.

이 겨울, 고슴도치처럼 달고 있는 내 안에 있는 수많은 가시를 하나하나 부러뜨리고 누그러뜨려 추위에 떠는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싶다. 세상 사람들 편견과 질시로 인해 고독하고 외로워하는 순수한 한 영혼을 위해 눈물 흘리고 싶다. 그리하여 그들에게 따스한 체온이 되어 추위를 나누고 싶다. 맑은 그 영혼에게로 강처럼 흐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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