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4-04-19 17:35 (금)
[여명] 너무 쿨 하게 살지 말자
상태바
[여명] 너무 쿨 하게 살지 말자
  • 전민일보
  • 승인 2015.01.26 11: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용호 국회홍보기획관

 
유치원 여교사가 네 살 바기 아이를 한 주먹에 날리는 모습이 눈앞에 자꾸만 어른거린다. 병아리 같은 아이가 나동그라지는 광경도 소름이 끼치는 일이지만 쓰러졌던 아이가 벌떡 일어나 교사 앞으로 되돌아오는 모습에 가슴이 더 미어졌다. 아이가 얼마나 겁에 질렸으면 울지도 못하고 저처럼 자동반사적인 행동을 할 수 있을까.

세상이 거칠다보니 이제 별의 별 일을 다 보고 산다. 주변에는 충격적이고 가슴 아픈 이야기가 너무 빈번하다. 하지만 내 코가 석자라 그때마다 슬퍼할 여유가 없다. 다른 사람의 어깨를 밟고 올라서지 않으면 생존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섣부른 동정은 사치가 되고 말았다.

지난해 겨울 직장인들의 애환을 그린 ‘미생’이라는 TV드라마가 화제였다. 우리들도 ‘장그래’라는 인턴 사원을 비롯한 등장인물들의 처지와 다르지 않다는 공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도 살아있으나 온전히 살아있지 못한 미생(未生)이다.

문학에도 이런 사회 기류가 반영되고 있는 모양이다. 매년 연말 주요 일간 신문은 신춘문예 당선작을 발표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당선작들에는 소시오 패스와 같은 극단적이고 비정상적인 인물이 등장한다고 한다. 사회적 병리현상을 소재로 한 작품이 많은 것이다.

한 때는 신년 벽두에 여기저기 신춘문예 당선작을 찾아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한 출판사 간부는 최근 이런 문학계 현상을 전하며 신춘문예 당선작들에서 잔잔한 재미는 고사하고 자주 역겨움을 느낀다고 안타까워했다.

두툼한 심장과 얼굴을 가지지 않고서는 견디기 힘든 사회가 되었다.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우리들도 덩달아 주위의 고통에 무감각한 인간형으로 진화되고 있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다.

미국의 한 조사는 요즘 사람들이 공감능력을 잃어가고 있다고 경고한다. 2010년 미시건대학교의 한 연구 결과, 대학생들의 공감능력이 30년 전에 비해 40%정도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공감하며 괴로워하기보다는 외면하고 살아가는 것이 적자생존의 지혜가 돼버린 셈이다.

공감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은 소위 쿨 해지는 것이다. 서로 좋아 죽고 못 살다가도 일순간 의연하게 헤어질 수 있는 능력, 웬만한 고통쯤은 담담히 감내할 수 있는 능력, 이게 쿨 한것이다. 감정을 금세 거둬들일 수 있는 재주가 극단 사회를 살아가는 신무기가 되었다.

쿨 한 것이 그다지 좋아보이지는 않는다. 쿨 함은 사실 둔감한 것이다. 연구에 따르면 쿨 한 사람은 피부가 두껍고 외부 자극에도 영향을 덜 받는다고 한다. 쿨한 사람의 피부는 민감한 사람보다 더 차갑다는 것이다. 둔감하므로 웬만한 것은 쿨 하게 넘길 수 있다. 너무 예민한 것도 좋지는 않지만 쿨 한 것도 별부럽지는 않다.

쿨 한 사람이 넘쳐나는 사회, 쿨 한 사람이 인정받는 사회는 삭막할 것 같다. 인정이 없는 메마른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외부의 자극에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것은 정신 질환의 일종이다.

젖먹이 어린아이에게 주먹을 날릴 수 있는 유치원 교사의 폭력성은 공감 능력의 극단적 결핍도 한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어린 아이와 소통하고 공감한다면 그런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다.

국가도 국회도 회사도 다들 소통과 공감을 강조한다. 아마 우리들에게 공감능력이 그만큼 떨어졌다는 역설적인 반증일 것이다. 살다보면 누구나 어려운 일을 당하게 되는 법이다. 때로는 외롭고 괴로워 위로를 받고 싶을 때도 있다. 사람이니까. 그런데 주변에 온통 쿨 한 사람만 있다면 어찌되겠는가.

나부터 공감능력을 키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쿨 한 것이 정상이 아니라 남의 감정에 따뜻하게 반응하는 것이 정상이다. 이게 바로 함께 사는 세상이 아니겠는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신천지예수교 전주교회-전북혈액원, 생명나눔업무 협약식
  • '2024 WYTF 전국유소년태권왕대회'서 실버태권도팀 활약
  • 남경호 목사, 개신교 청년 위한 신앙 어록집 ‘영감톡’ 출간
  • 이수민, 군산새만금국제마라톤 여자부 풀코스 3연패 도전
  • ㈜제이케이코스메틱, 글로벌 B2B 플랫폼 알리바바닷컴과 글로벌 진출 협력계약 체결
  • 맥주집창업 프랜차이즈 '치마이생', 체인점 창업비용 지원 프로모션 진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