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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선씨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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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선씨에게
  • 전민일보
  • 승인 2015.01.12 11: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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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선 한일장신대 인문학부 교수

 
도선 씨. 도선 씨가 살았던 마을 앞 벽돌에 스레트 지붕 올린 집은 옆 마을에서 살던 총각이 이사하여 살고 있답니다. 도선씨가 하늘나라에 간 지 벌써 한 해가 저물었으니 세월이 참 빠릅니다. 도선 씨가 떠난 이후 마을에는 크고 작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도선 씨가 하늘나라로 가던 날 영만이 형님이 경운기로 방아를 찧어오다 교통사고를 당해 도선 씨랑 같은 장례식장에서 장례를 치렀지요. 혹 그곳에서 만나 서로 좋아하는 막걸리라도 한 잔씩 마시지 않았나요? 마을 사람들은 젊은 사람이 한 날 함께 가는 바람에 겹 초상이 났다고 내심 불편해했습니다.

도선 씨. 도선 씨가 하늘나라에 간 날 이른 아침에 마을 입구에서 나를 만난 것 기억하지요? 담뱃값이 없다면서 1,000원만 달라고 했지 않아요? 그 때 지갑이 없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도선 씨가 담배를 피우고 나면 담배꽁초를 마을길에다 버리는 통에 동전이 있었지만 주지 않았습니다. 술을 마시지 않았을 때는 담배꽁초를 버리지 않지만 술에 취하면 마을길이 도선 씨 재떨이였잖아요? 도선씨는 맨 정신일 때보다 술에 취한 날이 더 많았으니까요. 그래서 처음 본 사람은 도선 씨가 소아마비 때문에 휘청거리는게 아니라 취기 때문으로 알았을 정도였습니다. 쓰레기나 담배꽁초를 줍는 사람은 나 하나인데 버리는 사람은 몇 사람이 되다보니 그게 너무 싫었습니다.

그 날 하루 종일 마음이 찜찜했습니다. 차라리 식당에 밥 먹으러 가는 길인데 밥값이 없다고 했다면 내가 어떤 수를 써서라도 돈을 줬을 텐데 말입니다. 하기야 도선 씨가 그런 거짓말을 할 정도로 융통성이 있다면 마을사람에게 외면당하고 따돌림 당하지 않았겠지요. 도선 씨한테 1,000원을 주지 않았다는 말을 우리 부모님께 괜히 해서 쉰을 훌쩍 넘긴 나이에 처음으로 혼났습니다. 우리 어머니 말씀이 도선 씨는 담배와 술이 밥인데 왜 돈을 주지 않았냐는 것이었어요.

도선 씨. 치매 걸리신 어머니는 어디 계십니까? 술 취한 도선 씨가 큰 대자로 마을길을 막고 누워 있으면 정신이 가물가물한 상태에서도 머리를 쓰다듬어주시던 모습이 선합니다. 가뭄에 햇살 나듯이 술을 먹지 않아 도선 씨 정신이 맑은 날은 길가에 누워 있는 어머니 머리를 도선 씨가 쓰다듬어드렸지요. 도선 씨 장례식장을 유일하게 지키셨던 어머니가 장례기간 내내 정신이 돌아왔다가 장례를 마치고나서 예전보다 훨씬 기억력이 떨어졌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인생살이를 하면서 우리가 병을 취사선택할 수 있다면 고통스럽고 상처받고 아픈 기억은 치매 걸리듯 까마득하게 잊고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어리석게 해봅니다.

도선 씨. 도선 씨에게 주지 못한 1,000원으로 인해 깨달은 게 참 많습니다. 누군가가 도움을 청하면 크든 작든 물질이든 시간이든 인색하게 굴어서는 안되겠다는 것을 마음 깊이 새겼습니다. 그 일을 겪은 이후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 앞에서 궁색하게 행동한 데 대해 많이 뉘우치고 반성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약속을 할 때 반드시 “내가 살아 있으면”이란 전제를 내세웁니다. 도선 씨에게 빚진 마음을 이 땅에서 힘들고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갚도록 힘쓰겠습니다. 도선 씨. 미안합니다. 용서해주실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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