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를 보면, 공자가 “한쪽말만 듣고도 옥사(獄事)를 판결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자로일 것이다.”라고 말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송사를 다투는 자는 늘 자기가 옳고 상대가 나쁘다고 말합니다. 한 쪽 말을 들으면 상대가 나쁜 것으로 생각되지만, 상대의 말을 들으면 그 반대가 됩니다. 한 쪽말만 듣고 판단하여 처리하면 잘못되는 경우가 많은 법인데, 자로는 한 쪽 말만 듣고도 누가 잘못했고 잘했는지를 결정한다는 겁니다. 자로는 누구보다 성격이 급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공자는 자로의 급한 성격이 늘 걱정이어서, 자로가 신중한 사람이 되도록 깨우치기 위해서 그렇게 말했다는 겁니다.
하지만 이와 다른 해석도 있습니다. 비록 자로가 급한 성격이지만, 진실(忠)하고 신의(信)가 있으며, 분명하고 결단력이 있었기 때문에 그가 말을 하면 사람들이 모두 그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리지 않고 믿었다는 겁니다.
자로의 사심(私心) 없는 관점이 한 쪽 말만으로도 진상을 파악할 수 있었고, 또 그가 삶 속에 보여준 신뢰 때문에 원고나 피고나 모두 그의 판단에 승복했다는 것입니다.
공자는 자로의 조급한 성격을 걱정한 게 아니라, 우직하고 믿음에 철저했던 그의 생활태도가 송사에서도 적절하게 빛을 발휘한고 칭찬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다음과 같은 말을 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송사(訟事)를 듣고 처리하는 일은 나도 남과 다르지 않다. 나는 그것보다도 반드시 송사(訟事)가 없어지게 하겠다.”
백성의 소송을 들어서 시비를 가려주는 일은 공자도 다른 재판관과 다를 게 없습니다. 하지만 공자는 다른 사람들과 다른 점이 있습니다. 아예 소송이 일어나지 않게 한다는 겁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 자로(子路)가 아무리 한마디 말로 송사를 잘 처리한다 하더라도, 송사가 없는 것만은 못합니다.
송사가 있다는 것은 다툼이 있다는 것이고, 다툼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사회가 제대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싸움을 진짜 잘하는 사람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처럼, 진짜 좋은 사회는 소송이 공정하게 잘 처리되는 사회가 아니라, 소송 같은 게 아예 생기지 않는 사회입니다.
K형.
소송이 공정하게 처리되는 사회는 기껏해야 이류사회입니다. 정말 좋은 사회는 소송 같은 게 아예 없는 사회입니다. 나라를 다스리는 이들이 툭하면 법이나 찾고 소송이나 들먹이는 사회는 뭐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입니다. 공자에 따르면, 정치는 바르게 하는 것이니(政者正也) 올바른 정치가 이루어지기만 하면 송사 같은 것은 저절로 없어집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떻게 해야 올바른 정치가 이루어져 송사 같은 게 저절로 없어져버릴까요?
간단합니다. 공자가 말한 대로 임금이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다워지는 겁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임금이 임금다우니 신하가 신하다워지는 사회를 만드는 것입니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샘이 깊은 물은 마르지 않는 법이니, 뿌리인 근본을 바로하고 샘인 근원을 깨끗하게 하는 겁니다. 바로 정본청원(正本淸源)입니다.
K형.
2014년의 사자성어로 ‘거짓과 진실이 뒤바뀌는 것’을 뜻하는 지록위마(指鹿爲馬)를 꼽았던 대학교수들이 2015년 새해의 사자성어 정본청원(正本淸源)을 선정했다고 합니다. 관피아의 먹이사슬과 비선조직의 국정 농단 같은 어지러운 상태를 바로잡아 근본이 바로 서고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만들자는 뜻이랍니다.
교수들뿐만이 아닙니다. 여당의 대표라는 분까지 나서서 “올해는 근본을 바로하고 근원을 깨끗하게 하는 정본청원(正本淸源)의 정신으로 보수혁신을 완수하겠다.”고 다짐했다는 소식입니다.
제발 말을 교묘하게 하고 얼굴을 그럴듯하게 꾸며서, 끝내는 사람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교언영색(巧言令色)이 아니기를 바랄 뿐 입니다.
